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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 상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에도 처음으로 「책의 날」이 제정되었다. 원래는 팔만대장경을 완간한 1252년10월11일을 기념하여 11일로 정했으나 마침 일요일이어서 금년은 12일로 하루를 연기했다.
따지고 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의 국력이 기우뚱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국가적 대사업이었다. 국민의 부담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낳게한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나라를 「책의 문화」로 꽃피우게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글을 숭상하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많은 선각들의 글 속에 갈 나타나 있다. 퇴계선생의 시조 한 수. 일종의 독서 권장론이다.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못뵈/고인 못 보아도 예던 길앞에 있네/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이리.』
얼마전에 타계한 현민 유진오박사도 젊은 시절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의 『독서법』 이란 글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책만 펴 놓으면 우리는 수천년 전의 천재와도 흉금을 터놓고 마음대로 토론할 수 있으며, 육해 수만리를 격한 곳에 있는 대학자의 학설도 여비나 학비도 들일것 없이 집에 앉은채 자유로 듣고 배울수 있다.』
중국에서는 책을 일컬어 「간고상우」라 하여 천년을 사귄 벗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책을 벗으로 삼으려면 무엇보다 책과 친하지 않으면안된다. 그 점에선 「처칠」의 권고가 생각난다.
『설령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가의 책을 한권 빼어들고 쓰다듬거나 아무데고 닥치는대로 펴서 눈에 뛴 최초의 문장부터 읽어보라. 그리고 설사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있는가를 기억해 두라. 그러면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것이다.』
지난 상반기 우리나라 도서출판은 2만4백48종에 8천6백50만권을 넘었다. 약1억5천만권을 발행한 작년도 전체 양보다 크게 증가한 추세다. 이것은 세계 10위권안에 드는 숫자다. 가위 팔만대장경을 찍어낸 후손답다.
하지만 찍어낸만큼 많이 읽는것도 중요하다.
「책의 날」 을 맞아 그 긍지를 한번 되살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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