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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명태회는 어떤 맛일까

중앙일보

입력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식 2세대 명태가 알에서 부화하고 있다. 알속에 명태 치어가 보인다. 주기중 기자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식 2세대 명태가 알에서 부화하고 있다. 알속에 명태 치어가 보인다. 주기중 기자

명태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생선이다.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7마리를 먹는다는 통계가 있다. 불리는 이름도 많아 서른 개 가까이 된다. 별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친근한 먹거리라는 뜻이다. 우선 싱싱한 명태는 ‘생태’, 얼린 것은 ‘동태’다. 말린 명태는 ‘북어’라고 한다. 겨울 일교차가 큰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마르면 색이 누렇게 되는데, 이를 ‘황태’라고 한다. 황태로 말리다 날씨가 풀려버리면 검게 말라 ‘흑태’가 되고, 반대로 너무 추우면 희게 말라 ‘백태’가 된다,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라고 부른다. 찜을 해 먹는 ‘코다리’는 명태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꾸덕꾸덕하게 말린 것이다.

크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어린 명태를 ‘노가리’ 혹은 ‘애기태’라고 부른다. 잡는 방법에 따라서도 나뉜다.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網太)’,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釣太)’라 이른다. 잡힌 지역에 따라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북방 바다에서 잡으면 ‘북어(北魚)’, 강원도에서는 ‘강태(江太)’, 함경도에서는 ‘왜태(倭太)’라고 한다. 이름에 얽힌 속설도 많다. 명태 간으로 기름을 짜 불을 밝혔다고 해서 ‘밝을 명(明)’ 자를 써 명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또 함경도 지방에서는 간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명태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명태 수정란을 부화시키는 사육실에서는 붉은색 조명을 쓴다. 주기중기자

명태 수정란을 부화시키는 사육실에서는 붉은색 조명을 쓴다. 주기중기자

 최진 박사가 명태 치어의 발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주기중 기자

최진 박사가 명태 치어의 발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주기중 기자

 명태는 버릴 것이 없다. 머리부터 내장까지 모두 훌륭한 식재료다. 살코기와 곤이는 국이나 찌갯거리로 이용되고, 알과 창자는 젓갈을 만든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필수 아미노산이 많다. 술안주로 즐겨 먹지만, 해장국으로도 북엇국만 한 것이 없다.

자주 식탁에 오르지만 2000년 이후 근해에서는 씨가 말랐다. 1970년부터 어린 명태인 노가리잡이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러시아·일본·미국에서 전량 수입한다. 국내산은 미미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해양수산부는 ‘동해수산연구소’를 주축으로 2014년부터 명태 복원에 나섰다. 살아있는 명태를 확보하기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명태는 수심 50~450m에서 서식한다. 그물에 잡혀 올라오는 동안 대부분이 죽는다. 살아있는 명태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어민들로부터 한 마리에 50만원에 살아있는 명태 200마리를 구입했다.

명태를 살리기 위한 연구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휴일도 반납하고 24시간 수조를 지켰다. “수온을 맞추고 먹이도 공급했지만 어획 그물에 긁힌 상처와 스트레스로 2~3일 만에 배를 뒤집고 떠오르는 명태를 보면 피가 말랐습니다.” 변순규 박사의 말이다.

동해수산연구소 수조에서 수정란을 생산하는 양식 1세대 어미 명태. 주기중 기자

동해수산연구소 수조에서 수정란을 생산하는 양식 1세대 어미 명태. 주기중 기자

동해수산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명태 사료. 영양가가 풍부해 명태가 빨리 자란다. 주기중 기자

동해수산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명태 사료. 영양가가 풍부해 명태가 빨리 자란다. 주기중 기자

대부분의 명태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고, 정치망에서 어획한 암컷 1마리가 용케 살아남았다. 기적적으로 수정란 53만 개를 얻어 부화에 성공했다. 연구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만세를 불렀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명태 인공부화에 성공한 것이다. 2015년 해양수산부는 20cm 크기로 자란 1세대 명태 1만5000마리를 고성 앞바다에 방류했다. 또 200마리를 선별해 연구소 수조에서 산란이 가능한 어미(35㎝ 이상)로 키워냈다.

2016년 10월 마침내 2세대 수정란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최초 수정란에서 부화한 치어가 자라 알을 낳은 것이다. 현재 연구소와 민간 양식업자 양식장에서 2세대 명태새끼 100만 마리가 자란다.

한편 고성 앞바다에 방류한 명태가 올 초 동해로 다시 돌아와 서식하고 있음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양식은 물론 동해 명태 어족자원을 회복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동해수산연구소 이주 양식과장은 “2020년이면 양식명태가 식탁에 오릅니다. 명태회도 맛볼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명태 양식은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수족관의 수온을 섭씨 7~10도로 맞춰준다. 물도 끊임없이 순환시켜야 한다. 사료 개발도 중요하다. 치어 먹이인 플랑크톤을 배양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다 자란 명태를 위한 영양가 높은 사료도 생산해야 한다. 연구소에서는 명태·멸치·크릴새우 분말과 밀가루를 이용해 자체 사료를 개발했다. 사료담당 연구원 최진 박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명태로서는 처음 보는 먹이인 셈이지요. 입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료의 맛과 모양을 바꿔가며 순치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명태는 자연 상태에서는 3년이 돼야 산란한다. 그러나 연구소는 사료 품질을 높여 명태가 빨리 자라게 해 이를 1년8개월로 단축했다.

동해수산연구소 김기승 연구원이 새끼명태의 먹이인 플랑크톤을 배양하고 있다. 주기중 기자

동해수산연구소 김기승 연구원이 새끼명태의 먹이인 플랑크톤을 배양하고 있다. 주기중 기자

명태사료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주기중 기자

명태사료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주기중 기자

질병관리는 더 어렵다. 바이러스가 퍼지면 순식간에 전염되기 때문이다. 명태 양식은 수정란과 치어 관리, 사료 개발, 질병 관리의 삼박자 맞아떨어져야 한다.
명태 양식은 크게 ‘수정란 확보-부화-어린고기-어미’ 4단계를 거친다. 현재 연구소에는 다자란 1세대 명태 600여 마리가 있다. 암컷과 수컷이 수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수정란을 생산한다. 명태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비교적 어두운 조명을 쓴다. 연구원들은 명태를 관찰할 때 헤드랜턴이나 손전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명태가 부화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명태 알은 수정이 되면 물에 뜬다. 이를 채집해 부화장 사육실로 옮긴다. 수정란을 받는 날짜에 따라 각기 다른 수조에서 관리한다. 1.3㎜의 투명한 알이 꿈틀거리며 깨어난다. 꼬리를 떨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아직 깨지 않은 알 속에 새끼고기가 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생명의 신비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국의 수산양식 수준은 세계 6위다. 그러나 예산은 선진국에 비해 10분의1 수준이다. 일본은 수정란을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2~3년 만에 일본을 앞질렀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연구원들의 투지로 이룬 성과다. 해양수산부 산하 동해수산연구소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 해변에 있다. 그러나 해변은 군사지역으로 묶여 철조망이 쳐져 있다. 연구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려면 15㎞를 돌아 주문진항까지 가야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 수산연구소의 연구환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월간중앙>

주기중기자·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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