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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下. 생각 바꿔야 일자리 생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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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애견산업은 떠오르는 유망 분야다. 그러나 국내에는 애견미용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다. 변선구 기자

"앞으론 평생 직장이 아니라 평생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 아닌가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박한나(19)양은 요즘 매일 서울 중구 필동의 애견미용학원에 간다. 졸업 뒤 진로를 고민하다 좋아하는 강아지와 평생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길을 택했다.

한때 전문대 애견학과에 진학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대학의 교과과정을 살펴보니 전문학원에서 1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박양의 부모는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한 뒤 번듯한 직장인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박양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는 게 직장 명함을 갖는 것보다 행복할 거라 판단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고교 1년생 이수지(17)양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애견산업이 크게 번창할 텐데 이걸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학교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비스 산업은 소비.향락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정부나 교육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공교육을 통한 서비스업에 대한 직업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

◆ 서비스도 산업이다=한여름 전력 수요가 정점에 이를 때마다 새벽과 밤에 켜 놓는 골프장 조명이 여론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에 골프장 250개를 지으면 산업단지 12개를 만들어 320개의 중견기업을 유치하는 것과 비슷한 생산 효과가 생긴다. 특히 골프장의 고용 효과는 산업단지의 세 배가 넘는다. 해외로 나가는 골프 관광객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의료.교육.보육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를 공공재로 보고 규제만 하다 보니 산업이 기형화했다. 진료비가 낮은 일반외과.산부인과에는 지원하는 의사가 갈수록 줄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성형외과.피부과 등에만 의사가 몰린다. 교육시장에서도 공교육이 부실하니 사교육시장만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정기택(의료경영학과) 경희대 교수는 "고급 의료.교육 서비스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가는 데 제약이 없어진 마당에 국내에서만 규제를 하는 건 외국에 가서 받는 건 괜찮고 국내에서 하면 안 된다는 왜곡된 평등주의"라고 지적했다.

◆ 이해관계 조정 가능하다=싱가포르는 일찌감치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을 허용했다. 대신 영리법인에는 정부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 영리법인이 번 수익금의 일부를 국공립병원에 지원하는 '메디실드'라는 제도도 도입했다. 그 결과 영리법인은 국내외 자본의 투자로 성장할 수 있었고, 국공립병원은 늘어난 정부 보조금 덕에 서민을 위한 의료 혜택을 늘리게 됐다.

임재영 한림대 교수는 "선진국에선 응급 의료시스템, 빈민층 진료.교육 등 채산성이 맞지 않는 분야는 정부가 맡고 고급 의료.교육 서비스는 민간 자본에 개방했다"며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면 공공성과 산업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과감한 실험을 해 보자=애초 정부는 제주도에 한해 외국의 영리법인이 병원을 세워 다양한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제주 특별자치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런 시도는 무산됐다. 열린우리당 일부와 민주노동당 의원의 반대 때문이었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넘겨주려던 외국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 허가권은 결국 현재대로 정부에 남게 됐다. 병원 부대사업도 현행 의료법을 적용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외국 영리법인 유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동북아 허브'를 만들기 위해 지정한 인천, 부산.진해, 광양 경제자유구역도 마찬가지다.

김민수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대학 교수는 "서비스 산업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등 한정된 지역 안에서라도 과감하게 실험을 해 볼 수 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정경민(팀장).김종윤.김원배.윤창희.김준술.손해용(이상 경제 부문), 허귀식(탐사기획 부문),

정철근(사회 부문), 박종근.변선구(사진 부문) 기자, 한상원 인턴기자(고려대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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