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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꼭 명운 걸어야하나|성병욱 <편집부국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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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달포전 4인의 주자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를 놓고 두김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단일화는 걱정말라고 하는데 단일화를 하자면 둘 중 누구하나가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혹시 필요하다면 양보할 각오가 돼 있느냐, 정 담판으로 조정하기가 힘들면 전당대회에서 경선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두김씨는 이구동성으로 우리 둘이 협의해서 기필코 단일화를 이룰 것이며,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김영삼총재는 두 사람이 각기 영·호남출신이기 때문에 후보경선을 하다보면 지역간 감정이 악화된다, 그러니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경선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대중씨도 단일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두 사람의 지지자들이 지쳐서 우리 선생님이 안돼도 좋으니 이제는 단일화를 해야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 대답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평소 느낌이 더욱 굳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아직 정치인들의 속셈을 가늠하고 앞날을 판단하는데 있어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걱정을 안끼치겠다는 말은 그렇다치고, 마음을 비웠다느니, 직선제가 되면 출마를 않겠다느니 하던 때가 언제인데 벌써 내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두김씨나 추종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양보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70년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이 일을 위해 간난신고를 겪으며 투쟁해온 그들이다.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집념을 불태워 왔다. 그런데 16년여만에 찾아온 이 모처럼의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요즘의 정황으로는 민주당의 후보단일화는 이미 물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선거운동 과정에서라도 단일화될 전망은 있는 것일까.
일각에는 63년 대통령선거운동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가 적은 것을 알고 사퇴했던 허정씨처럼 두김씨 중 한사람이 사퇴해 결국 단일화가 이룩되리란 기대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에는 몇 가지 책과하는 점이 있다. 우선 두김씨는 지역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출신 지역에서는 대규모 인파를 모을 수 있어 국민의 지지도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중립적인 지역도 최근의 몇몇 집회에서 보다시피 전국에서 조직 동원을 해오면 우열을 가늠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더구나 63년 선거에서 용퇴했던 허씨와 두김씨는 사람이 다르다. 허씨는 국민적 이미지는 좋았지만 조직 기반이 약했다. 집념의 사람이기보다 선비였다. 세사에 연연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날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김씨는 막강한 자기 조직을 지닌 집념의 사람들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기에는 그 동안 맺어온 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다.
단일화가 안되면 대통령선거전은 4파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야당 및 재야와 개혁을 바라는 상당수 국민들이 추구해온 집권세력의 교체에 난관이 조성된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대통령선거전이 4파면이 되면 유권자 30몇%의 소수 지지 대통령이 나오게 된다. 민주화를 지향하고 있는 다음 대통령의 임기는 국민의 다양한 욕구 분출로 상당한 불안이 예견된다.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가 약했던 대통령이 이러한 불안을 극복해낼 수 있겠느냐가 심각한 문제다.
집권 경험이 있는 체제세력과 줄곧 야당을 해온 반대세력이 1대 1로 나서 국민의 신임을 묻는 것이 다수지지 대통령을 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선거양상이다.
외국에서는 후보가 난립할 경우 결선투표로 다수대통령을 만들어낸다. 결선투표제도가 없는 우리로선 여야의 후보 사전조정이 다수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80년의 봄에 이어 제2라운드를 벌이는 3김씨가 그때 국민 심판을 받았더라면 그중 낙선된 둘은 이미 정계에서 떠났을 사람들이다.
1노씨를 더해 지금의 4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낙선되어도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당선되는 사람은 단임이니까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고, 나머지도 대권이 자기들의 독점물이 아니니 정치에서 곱게 물러날 각오를 해야한다. 또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될 것이다. 단일화의 거부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제 4인은 이번 레이스에 정치 생명의 마지막 명운을 거느냐, 다음을 기약하고 이번에는 양보해 국민들의 존경과 아쉬움을 남겨 두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스스로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떤 선택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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