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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3월호] 한국 축구계의 ‘만년야당’ 신문선의 격정토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부정부패 뿌리 깊은데 연맹은 입만 열면 돈 타령뿐
■ 심판매수 전북FC, 범 현대계라 솜방망이 징계했나
■ 좌빨, 비주류를 왜 해설자로 쓰느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 독일월드컵 ‘오프사이드 논란’ 때 내 편 없어 눈물 났다
■ 쓴소리 해야 진짜 해설가… (이)영표가 해설 좀 하더라
■ 슈틸리케 대표팀, 공수전환 속도 더 높여야

‘쓴소리꾼’, ‘정몽준 저격수’….
직설적 입담으로 유명한 스타해설가 출신
신문선 교수가 말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
그가 진단하는 ‘중병’ 걸린 한국축구 치료법.
그리고 신문선식 축구 사랑법

“기득권 세력과 부역자들이 한국축구 망쳤다”

결국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축구선수 출신이자 스타해설가로서 대중에게 친숙했던 신문선(59) 명지대 교수(기록정보대학원) 얘기다. 지난 1월 한국 프로축구의 변화와 개혁을 내걸고 한국프로축구연맹 11대 총재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신 교수는 대의원 23명의 과반 획득에 실패해 낙선하고 말았다. 그를 지지표는 5표뿐, 반 대표가 17표, 무효표가 1표였다. 일각에서는 경쟁자 없이 단독후보였던 신교수가 경기인 출신 최초로 연맹 수장이 돼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란 기대가 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년 넘게 축구해설가로서 인기를 끌었던 신문선 교수의 도전은 축구계 안팎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재벌 대기업 인사들이 도맡아온 연맹의 수장자리를 축구계 비주류 출신이 차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낙선이 확정된 1월16일, “결과에 승복하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한국축구를 사랑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쓸쓸하게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사실 축구 담당 기자들과 축구계 인사들 사이에선 신 교수가 단독후보로 나왔지만 당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를 포함해 연맹의 주류 세력과 반대편 사이의 ‘진영싸움’ 구도로 선거판이 흐려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협회와 연맹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각 구단의 대표가 평소 주류 측과 각을 세우고 쓴소리를 마다 않은 신 교수를 소신 있게 지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축구계 현실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아는 신 교수가 이런 현실을 몰랐을 리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도 그는 왜 쉽지 않은 길을 택했을까?

1986년 프로축구 1세대 선수로서(유공) 촉망받던 시절, 신문선은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돌연 축구화를 벗고 학업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 그가 축구해설가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2006년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에 섰다. 독일월드컵 본선조별리그 3차전 경기인 한국과 스위스전에서 벌어졌던 ‘오프사이드’ 논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는 희한한 사건으로 20년 동안 잡아왔던 방송 마이크를 내려놓고 미련없이 축구해설가 직을 떠났다. 6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는 주변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함과 소신을 보여주었다. 기자는 인생의 변곡점이 된 순간순간마다 그가 내린 결단의 순간이 궁금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신 교수는 이번 선거를 둘러싼 뒷얘기와 한국 축구계가 처한 현실, 자신의 축구철학 등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다섯 표밖에 얻지 못했는데요. 너무 적지 않나요?
“축구협회회장 선거에 세 번 도전한 허승표 회장(피플웍스) 같은 로열패밀리도 첫 선거에서 몇 표 못 얻었잖아요.(웃음) 숫자로는 다섯 표가 적을 수 있지만 의미는 크다고 봐요. 기득권 세력 눈치 안보고 변화와 개혁을 위해 용기 있게 표를 준 거잖습니까. 한국프로축구계가 민주화되는데 이 다섯 표는 밑거름이고 울림이 될 겁니다.” 신교수가 언급한 허승표 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허 회장은 GS그룹 창업주의 아들이면서도 재벌 수업을 받지 않고 선수의 길을 택한 축구인 출신이다. 그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중심으로 협회가 폐쇄적으로 운영돼왔고, 측근 중심의 인사 등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며 세 차례나 축구협회장 선거에 도전한 바 있다. 1997년 첫 선거에서 3표를 얻고 낙선한 허회장은 세 번째 도전인 지난 2013년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8표를 얻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을 1표 차로 이겼다. 하지만 결선투표에서 15표를 얻은 정회장에게 밀려 축구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솔직히 몇 표 얻을 것으로 예상했나요?
“어떤 언론에서는 한 표 예상한 곳도 있더라고요.(웃음) 대의원 23명 중 적어도 8표 이상은 나올 것으로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미치지 못했어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제11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후보 선거에 나선 신문선 교수가 1월 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투표를 앞두고 대의원들을 상대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신 교수는 대의원 23명 중 찬성 5표, 반대 17표, 무효표 1표를 얻어 낙선했다. [사진·뉴시스]

제11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후보 선거에 나선 신문선 교수가 1월 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투표를 앞두고 대의원들을 상대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신 교수는 대의원 23명 중 찬성 5표, 반대 17표, 무효표 1표를 얻어 낙선했다. [사진·뉴시스]

현실적으로 어려운 싸움이었다고요?
“23표 중 협회와 연맹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범 현대계 표가 5표(정몽규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축구협회 측 2표와 현대 계열 기업축구단인 전북·울산·부산 3표를 뜻함)잖아요. 이들이 저를 찍기는 힘들다고 봤어요. 다른 대의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컸던 것같고요.”
낙선 후 기자회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나요?
“저는 축구인으로 살면서 결과에 늘 승복해왔고 이번에도 승복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 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불공정한 게임이었지만 제 공약이나 개혁비전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한 것이 성과였고요. 이번에 제기한 문제들은 앞으로도 연맹이 잘못하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거에요.”
이번 선거가 그렇게 불공정했나요?
“저는 단일후보였어요. 그런데 후보 등록도 하지 않았고, 이미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권오갑 총재를 상대로 선거를 치르는 것 같더군요. 투표 전부터 제가 낙선하면권 총재 체재로 계속 간다는 얘기가 이미 연맹 안팎에서 들렸고요. 낙선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정식 후보로서 연맹 측으로부터 기본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협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선거를 치렀어요.”

“지지한다던 구단대표도 연락 끊어”

지난해 7월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 시작 전 서포터스와 관중이 전북의 심판 매수사건과 관련해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7월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 시작 전 서포터스와 관중이 전북의 심판 매수사건과 관련해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 분위기였다면 선거운동은 제대로 하셨습니까?
“한 기업형 구단 대표가 제가 후보로 나온 것을 전폭적으로 성원한다면서 전화를 해왔어요. 공약이 기대되는데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는 거에요. 장소 잡아서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끝내 전화가 안 오더라고요. 다른 구단 대표들 역시 내가 왔다가 갔다는 얘기 나오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다며 오지 말라고들 하고요. 그런데도 하루에 700~800㎞씩 강행군하면서 돌아다녔죠. 대통령 뽑을 때 관훈토론회 같은 것 하잖아요. 패널들로부터 공약 검증도 받고 담론의 장이 만들어지는데 이번 선거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연맹은 협조도 안되고, 대의원 만나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고요. 후보 등록한 사람한테 등록비 5000만원 내라는 말하기에 앞서 공약발표 할 수 있는 자리부터 마련하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룰이나 규정 같은 것부터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깜깜이 선거를 한 거죠.”
연맹 측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자기들 나름대로 짜놓은 프레임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납득이 안됐죠. 막상 제가 정식으로 후보 등록해 뛰려고 하니(연맹 측이) 적극적으로 디펜스를 하기 시작한 거 아닐까요. 공약과 비전을 논하기보다는 순전히 돈 얘기만 하면서 여기 저기서 공격이 들어오는데….”
돈 얘기밖에 안 나왔다니요?
“30억~40억원 댈 K리그 스폰서를 재벌회장도 아닌 신문선이가 과연 구할 수 있느냐는 거죠. 연맹 수장을 뽑는 선거라면 프로축구계가 위기에 직면한 이유가 뭔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더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얘기가 오가야죠. 어떻게 나오는 얘기가 죄다 돈 돈얘기뿐입니까. 연맹 총재가 돈만 구해오면 되고 손 놓고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나요? 답답했어요.”
더 중요한 게 구체적으로 뭔가요?
“한국축구, 특히 프로축구계는 ‘중병’이 들었어요. ‘중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출마한 겁니다. 재벌이 축구계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내야죠. 그동안 재벌 회장들이 돌아가면서 돈 내고 하다 보니 오히려 참여하고 싶은 다른 광고주가 있어도 특정 기업 이미지가 너무 강해 나서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거든요. 이번 선거가 재벌 중심의 축구계 문화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돼야 했는데 스폰서 문제에만 초점이 모이는 식으로 선거판 자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신 교수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가며 K리그의 타이틀 스폰서 유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정기업이나 특정인이 지배하는 상품이 아닌, 또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다국적 기업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가 왜 ‘중병’에 걸린 겁니까?
“특정기업, 인물, 인맥에 의한 폐쇄성으로 인해 지난 30년 가까이 적폐가 쌓여왔어요. 요즘 최순실 사건을 계기로 민주대 반민주, 상식 대 비상식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축구계도 마찬가지예요. 농단을 일삼는 기득권 세력이 한국축구와 프로축구를 망쳐왔다고 봅니다. 부역자들도 있고요. 잊을 만하면 부패 사건이 터져요. 수년 전에도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선수나 감독이 징계받고, 자살하고 했지만제대로 책임진 사람 누가 있습니까. 부정부패 문제뿐만이 아니에요. 프로축구는 갈수록 침체되는데 그동안 연맹은 무슨대책을 내놨습니까.”
부역자라는 분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1994년 정몽준 축구협회장 체제 이후 협회 이사들 명단을 잘 들여다보세요. 연맹의 중요한 자리도 다 회전문이에요. 인사부터가 투명하지 못하고, 결국 이들이 권력자 옆에서 농단을 해온 것 아닌가요.” 한국 축구계가 중병이 든 데는 미디어의 책임도 작지 않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부역자들 중에는 일부 언론 장학생도있다”고 비판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비판이나 견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린 스포츠 강국… 스포츠 선진국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도 그렇고, 긍정적인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잖아요?
“2002년 월드컵이 터닝포인트였는데 그 기회를 못 살렸어요. 우리나라 4대 스포츠 종목을 볼까요? 광고주가 그냥 광고 줍니까? 중요한 게 인기도, 시청률인데 1등은 프로야구, 2등이 프로배구, 3등이 프로농구에요. 축구는 꼴찌고요. 과거 한국 대표팀이 친선경기만 해도 시청률이 30% 후반까지 갈때가 있었어요. 점점 떨어지더니 10%까지 갔고요. 다시 한자리 수까지 간다는 예측을 내놨거든요. 위기국면이라고 봤기때문에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제가 축구연구소(2004년)를 만들었던 겁니다. 구단들의 재정건전성이 약하다 보니 투자는 점점 감소하고요. 투자가 감소하면 경기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재미없는데 누가 축구를 봅니까. 자연히 광고 유치도 잘 안 되고 축구 중계권 가치는 바닥을 길 수밖에 없죠. 이런 악순환이 반복돼왔는데 연맹은 손 놓고 있었잖아요.”
그래도 한국 축구는 아시아권에서는 여전히 강국이잖아요?
“단순히 성적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스포츠 강국인데 스포츠 선진국은 아니에요. 월드컵 4강에 올라갔지만 부정, 부패 문제는 여전해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더 중요한데 전북FC 심판매수 사건을 한번 보세요.” 지난해 9월 프로축구연맹은 심판 매수가 사실로 드러나자 전북에 승점 9점 삭감과 벌금 1억원 부과 징계를 내렸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서포터스들도 추가 징계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등 반발했지만 답은 없었다. 오히려 무리한 후속조치가 뒤따랐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부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2017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북팀은 출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통보했다. 전북은 불복하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다. 구단이 심판매수 사건에 책임을 통감했다면 항소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구단 측은 스카우트 개인의 일탈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솜방망이 처벌을 한 연맹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 CAS는 지난 2월 초 구단의 항소를 기각했다. K리그는 국제적으로 두 번 망신을 당한 셈이다.
심판매수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어야 합니까?
“2006년 유벤투스(이탈리아 프로리그 세리에A 팀)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자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지난 두 시즌 우승을 박탈하고 세리에B(2부리그)로 강등시켰어요. 유럽대항전 자격 박탈에 무관중 경기 등 징계도 뒤따랐고요. 단장은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당했죠. AC밀란은 벌점을 30점이나 삭감당했고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중징계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그렇게 못했어요. 전북이 범 현대계라서 그렇게 못한 걸까요? 이 사건을 제대로 털고 갔어야죠. 그래야 (스폰서들에게) 돈 달라고 하죠. 상벌규정부터 확 바꿔서 지구촌에서 가장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야 해요.” 그는 미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피터 로즈 사례도 꺼냈다. 피터 로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개인통산 최다 안타 기록(4256안타)을 갖고 있지만 스포츠 도박에 베팅한 사실이 드러나 1989년 8월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추방됐다. 명예의 전당 입성도 좌절됐다. 메이저리그의 이런 태도는 프로스포츠라는 사업에 대한 분명하고 엄격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정당한 대가(돈)를 받고 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스포츠에 부정한 수법이 개입하면, 고객의 신뢰를 잃고 이는 전체 프로야구판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이유에서다. 신 교수는 “프로스포츠는 이미지를 팔고 이미지로 먹고 사는데, 부정부패로 얼룩졌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하고 치명적”이라고했다. “제가 연맹 총재라면 모든 직원들 대오각성 차원에서 축구팬, 광고주들한테 무릎 꿇고 사과했을 겁니다. 프로스포츠는 한번 신뢰를 잃으면 30억~40억원이 문제가 아니에요. 100억~200억원 이상의 가치가 날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했는데….” 인터뷰를 시작한 지 1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얘기 주제는 다시 선거로 돌아갔다. 그만큼 아쉬움이 컸던 것일까. 신 교수는 “많은 대의원이 내 얘기에 동의하고 공약에 공감했는데도 정작 투표에서 등을 돌렸다”며 허탈해 했다.

“막판에 모두 등돌려 서운했다”

왜 투표날 등을 돌렸을까요?
“연맹이 심판 배정도 하고 가진 권력이 막강한데 척지면 안되잖아요. 승패에 목매는 구단 대표들 입장에서는 눈치를 안볼 수가 없겠죠. 제가 성남FC 사장할 때 심판 배정 문제에 비분강개했던 일부 구단 대표님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까지 선거 과정에서 등을 돌리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서운하고 아쉬웠어요. 투표 전에 문자를 보냈어요. ‘표 달라는 얘기는 안 하겠지만 인간적으로 서운하다’고요. ‘연맹이 변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 동의하지 않느냐’고요. 평생 이번처럼 문자 메시지를 많이 보낸 적이 없어요.” 축구계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신 교수는 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쓴소리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특히 축구계 주류인 협회나 연맹 수뇌부에 늘 불편한 존재였다. 그래서 ‘축구계의 쓴소리꾼’ ‘만년 야당’ ‘정몽준 저격수’ 등과 같은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그는 프로축구계가 왜 침체돼 있는지를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방송 해설자로 한창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입바른 소리는 피하지 않았다.
쓴소리꾼이라는 별명 어떠세요?
“체육계든, 축구계든 무슨 사건만 터지면 미디어에서 내게달려와 코멘트를 부탁해요. 대중적 인기도 있고, 높은 연봉받으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폭탄 맞으면서 쓴소리 하는 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죠.” 신 교수는 언론에 기고글을 쓸 때도 조건이 까다로웠다. 제목도 직접 선택했고, 민감한 내용이라도 양보하지 않았다. 모 일간지 시론에 실린 ‘조중연(축구협회장) 물러나라’라던가, 서한 형식으로 쓴 ‘정몽준 회장님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몽준은 정말로 축구를 사랑하는가”라는 식의 도발적 내용을 담은 글 때문에 축구계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곤욕도 치르고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일도 빈번했다. 해설자로서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스위스 경기는 그에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이 1:0으로 뒤진 상황에서 스위스 선수 알렉산더 프라이가 넣은 두 번째 골을 놓고 오프사이드 논란이 벌어졌다. 부심이 깃발을 들었지만 주심은 그대로 골로 인정했다. 당시 SBS 해설위원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중계를 하던 신 교수는 “오프사이드가 아니다”라고 했다. 신 교수는 경기가 끝난 후 국내 축구팬들의 반발과 방송국으로 걸려오는 항의전화 때문에 하차하는 아픈 경험을 겪었다. 국내에서는 오프사이드 논란으로 시끄러웠지만 느린 화면으로 분석한 결과 주심의 정확한 판정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국제축구연맹에 (심판 오심을) 제소하겠다”고 언급해 국내 축구팬들의 성난 분위기를 더 부채질했다. 신교수는 졸지에 ‘나라를 팔아먹은 형편없는 해설자’로 전락했다.
당시에 욕 많이 먹었죠?
“욕 정도가 아니고 역적이 된 거죠.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며 방송국 PD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타방송에서는 명백히 오프사이드고 오심이라고 하는데 왜 SBS만 아니라고 했느냐’며 항의 전화가 온다는 거에요. 그 얘기 듣고 ‘방송 접고 들어간다’ 했어요. 방송 오래한 노련한 해설자고 축구전문가인데 시청자 입장을 모르겠어요? 저는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판단을 바로 했지만 해설 때는 최대한 톤 다운을 해서얘기를 했어요. 국민이 열 받는걸 제가 모르겠어요?” 당시 신 교수는 이전보다 목소리 톤을 낮추고 이렇게 해설했다. “느린 그림이 나오면 다시 얘기하겠습니다만, 최종적인 볼터치를 한국 선수가 한 것 같습니다. 느린 그림이 나오네요. 자 한번 보시죠. 횡 패스를 했습니다. 아! 한국 선수가 지금볼은 끊네요. 아, 부심은 깃발을 들었습니다만(…) ”
월드컵 와중에 귀국 비행기를 탔는데 심정이 어땠나요?
“기내식이 두 번인가 나오는데 밥은커녕, 물 한 모금 넘어가지가 않더라고요. 잠도 안 오고요. 공항에 도착했는데 한 기자가 ‘다시 그 상황이 와도 그렇게 해설할 거냐’고 묻는 거에요. ‘야, 축구 우리만 하냐?’고 했어요. ‘내가 돌 맞고 떠나는게 아니라 내 스스로 떠나는 거다’라고 스스로 각오도 다졌습니다. 그게 내 선택이고 내 자존심이었으니까요.” 독일월드컵 당시 오프사이드 논란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신 교수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졌다.

“역적 소리 듣고 한강 뛰며 마음 달래”

2014년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이 승부차기 끝에 4-2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범 감독(가운데)이 성남FC 신문선 사장과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4년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이 승부차기 끝에 4-2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범 감독(가운데)이 성남FC 신문선 사장과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나중에 해설이 정확했다는 게 확인됐죠?
“그랬죠. 국제축구연맹에서 심판들의 질적 향상 목적으로 월드컵 때 심판 판정 논란이 된 장면을 갖고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회 비슷하게 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왔었죠. 기자들, 심판들이 많이 참석했어요. 그런데 정작 스위스 경기 사례가 없는 거에요. 모 기자가 질문을 던졌는데 국제축구연맹 측은 ‘그게 왜 논란이냐’고 오히려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심판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준 거죠.”
많이 억울했겠습니다.
“외롭고 답답했죠. 하루에 몇 ㎞를 뛰었는지 몰라요. 비가 오고 번개 치는 날도 매일 한강을 뛰었어요. 누구도 ‘신문선이 맞았다’고 거들어주거나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게 서글프고 서운했어요. 아이들, 애 엄마는 심정이 또 어땠겠어요.” 입바른 소리를 하다 20년간 지속해온 해설자 생활을 하루 아침에 그만두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해설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제대로 비판할 줄 아는 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너무 강하게 얘기하니까 주변에 적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독일월드컵 때 토고전 중계를 끝내고 이동하던 중에 한 방송 관계자 말이 ‘방송사 고위층과 축구협회 고위 인사가 식사를 하면서 내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협회 관계자가 ‘왜 하필 축구계 공격만 하는 좌빨, 비주류를 해설자로 쓰느냐’고요. 1986년부터 2006년 월드컵까지 20년 동안 월드컵 현장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았는데도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왜 그렇게 쓴소리만 하느냐는 건데 저 자신에게 이렇게 답해요. ‘너는 교수고 지식인이잖아. 학문 연구도 중요하지만 사회현상이나 문제를 놓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 학자의 몫이다’라고요. 불이익이 오더라도 감수하고 할 얘기는 해야죠.”
해설하다 보면 오심도 자주 보일 텐데요.
“오심에 따라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죠. 단순 오심이라면 괜찮은데 의도된 오심이라면 그건 범죄행위죠. 한국 사회는 ‘의도된 오심’이 만연되어 있는 거에요. 이걸 고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선진국으로 절대 못 가요.”
요즘 맘에 드는 해설자가 있나요?
“(이)영표가 잘합디다.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요새 눈여겨보고 있어요. 가끔 조언도 합니다.”
해설 그만 두고 얼마 안 돼 학교로 가신 거죠?
“명지대 고위관계자가 식사나 하자고 연락이 와 만났는데 ‘월드컵 중계할 때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해설할 수 있었느냐’면서 ‘학생들 가르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와 가게 된 겁니다. 인생 참 새옹지마예요.”
과거처럼 다시 해설에 전념할 생각은 없나요?
“독일월드컵 후에 제가 (해설에 대한) 열정이 예전 같지 않아요. 이런 상태로는 제 힘있는 목소리 좋아했던 팬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해서 선뜻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네요. 교수로서 방송에서 예전처럼 똑같이 떠들고 하는 것이 좀 꺼려지는 측면도 있고요.”

그는 2015년 시민구단인 성남FC 사장으로 1년 동안 일하면서도 “욕먹어가며 할 일은 다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구단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성남 FC 사장 때는 어떠셨어요?
“성남이 일화 시절에 연 300억원씩 쓰던 부자구단이었는데 2015년 취임할 때 시에서 받은 돈은 70억원밖에 안 됐어요. 임금 체불도 14억원 넘게 있어서 실제로 가용 자금은 50억원 대였고요. 현실적으로 운영이 안 되잖아요. 시 의회 설득해서 예산 확보를 해야 했어요. 당시 이재명 시장이 속한 민주당은 소수당이었고 여당의원들 설득이 관건이었죠. 결국 70억 정도를 추경예산으로 더 받아냈습니다. 기업에서 광고협찬 받기보다 의회 설득해서 돈 받는 게 더 어려워요.”
여당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사장되면서 정치 중립 선언했어요. 또 시장 포함해서 누구로부터도 낙하산 선수를 받지 않고 투명·윤리경영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만으로 설득이 됐나요?
“축구가 사회적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으니 의회가 힘을 실어달라고 했어요. 부자동네인 분당, 가난한 중원과 수정이 사회적 통합을 해야 하는데, 이건 시민구단의 하위그룹인 중·고교 축구클럽을 통해 할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부자 동네에 살건 가난한 동네에 살건 한 유니폼 입고 땀 흘리고 같이 목욕도 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계층 간 단절이 없어지잖아요. 아파트 평수로 인간관계가 갈리는 그런일을 그동안 정치가 해결하지 못했는데, 스포츠, 축구가 할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호소한 거죠.”
축구가 사회통합 역할을 한다?
“프랑스월드컵 때 히딩크의 네덜란드팀에 한국 대표팀이 5:0으로 졌던 마르세이유라는 항구도시가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들어온 흑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는 곳이에요. 마약 등 각종 범죄행위가 만연하고 이민자와 원주민들과의 갈등도 심했고요. 그걸 통합해 낸 게 바로 마르세이유 FC라는 축구팀이에요. 제가 지향하는 시민구단은 바로 이런 모델이거든요.”

얼굴 붉히고 행사장 떠난 이재명

2014년 1월 2일 성남FC 신문선 사장이 취임식장에서 박종환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신 사장은 취임 후 시의회를 설득해 추경예산을 확보하는 등 구단의 재정건전성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뉴시스]

2014년 1월 2일 성남FC 신문선 사장이 취임식장에서 박종환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신 사장은 취임 후 시의회를 설득해 추경예산을 확보하는 등 구단의 재정건전성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뉴시스]

시장추경 받아서 구단 운영은 잘 됐나요?
“인건비 줄이느라고 저승사자 소리 들으며 욕 많이 먹었어요.(웃음) 수입은 하나 없고, 지출만 있는데다 임금체불까지 있어골병이 들어있으니 새로운 모형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됐거든요. 2015년 프로축구 개막경기 앞두고 4월 초 출범식을 하는데 코칭스태프들이 돈이 적다고 연봉 계약을 거부하면서 박종환 감독만 참석하고 코칭스태프 전원이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재명 시장은 식사도 안 하고 얼굴을 붉힌 채 행사장을 떠났고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재정건전성도 어느 정도 확보하고 FA컵도 우승하는 등 나름 성과를 거뒀습니다.”

신 교수는 성남FC 사장 시절의 경험을 설명하며 우리 프로구단 전반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연맹이 ‘한국형 샐러리캡’ ‘새로운 분배금 정책’ 등을 연구하고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또 2조원이 넘는 중계권료 확보로 대박을 친 J리그의 사례를 잘 들여다보고 우리도 중계권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펼쳤다. 특히 TV 중계품질의 중요성도 인터뷰 과정에서 수차례 강조했다. 다양하고 역동적인 화면이 나와야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고, 결국 수익확보의 기초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득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에 대한 신 교수의 예측이 궁금해졌다.

월드컵 최종예선이 곧 시작되는데 어떻게 예상하세요?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거에요. 낙관할 수가 없어요. 슈틸리케호가 속도가 떨어져요. 지금은 기술, 체력은 기본이고요. 공수전환의 속도가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전을 보니까 전체적인 슈팅과 패스 빈도는 통계적으로 높은데 포지션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공수전환 속도가 너무 느리더군요. 상대방 선수들이 다 내려가서 수비 정비가 된 후 골을 넣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 뒤에서 패스를 많이 돌리는 거죠. 세계 축구의 트렌드는 공수전환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의 속도 싸움이에요.”
한국인에게 축구는 어떤 존재일까요?
“밥이에요. 안 먹고, 안 보면 못 살아요. 우리는 일본·중국과 끊임없이 경쟁하잖아요. 특히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계속 부딪히는데 일반 국민 맘 풀어줄 수 있는 게 뭔가요? 야구? 역시 축구거든요. 도쿄대첩 때도 그랬고. 유럽 역사를 보면 프랑스가 독일에 많이 당했어요. 그러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때 프랑스는 우승을 하죠. (독일은 8강전에서 탈락) 샹젤리제 거리에 몰려나온 시민들 중에는 이제야 독일에 대한 패배의식을 떨쳤다는 이들이 많았어요. 축구는 그런 거에요.”
축구가 단순히 스포츠만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축구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트 중 하나라고 할 수있어요. 국민성과 기질을 대변하거든요. 몇 년 전 중국, 일본언론이 한·중·일 세 나라 축구를 비교해 달라고 하더군요. 일본은 기질상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전하게 한다. 그래서 쇼트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거죠. 중국은 대륙적 기질이 있어서 쇼트패스보다는 롱볼로 한두 번에 문전까지 가는 포스트플레이를 한다고 답했어요. 한국은 ‘가슴으로 축구합니다’라고 했죠. 잘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웃음)
한국은 정말 ‘가슴’으로 축구를 하고 있나요?
“가슴이라는 건 열정이고 사랑이잖아요. 오히려 제가 축구인들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들은 한국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요. 정말로 사랑하느냐고….”

글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한도형 인턴기자
사진 박종근 기자 park.jo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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