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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한국만화가 마음 친다나요 프랑스인들 관심에 놀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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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정은 빡빡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인터뷰와 사인회, 세미나와 미팅은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26~29일)로 이어졌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은 녹초가 됐지만 이들은 대신 온 가슴에 희망을 충전했다. 유럽에서의 만화 한류 열풍을 불붙인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으므로.

유럽에 '한국 만화'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앙굴렘 페스티벌부터다. 이 행사의 메인 테마로 열린 '한국만화 특별전'을 위해 당시 만화계와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하나가 되어 지원에 나섰다. 특히 이미지 중심의 유럽 예술풍 만화에 스토리가 강한 일본 리얼리즘 만화를 결합한 듯한 한국 '작가주의' 만화는 '일본 망가'와는 또 다른 문화쇼크로 유럽인에게 다가갔다.

"2003년 앙굴렘 때와 또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한국 만화를 처음 보고) 신기해 했는데 올해 앙굴렘에서 열린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전'에서는 한국 만화에 대해 요모조모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변병준)

실제로 프랑스의 캐스터맨(Casterman)과 독일의 에그몬트(Egmont VGS)도 한국의 젊은 만화가를 향한 구애가 한창이다. 바퀴벌레와 사는 남자를 그린 '그와의 짧은 동거'의 장경섭(36)을 비롯해 '귀신'의 석정현(30), '코스모스'의 김성준(35), '강철의 대지'의 문효섭(33)이 이들 유명 출판사와 작품 계약을 하거나 출간한 상태.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한국 작가주의 만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자신도 궁금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최규석씨는 "현실을 솔직하게 잘 끄집어내는 힘이 있대요"라고 전한다.

"다니구치 지로나 오토모 가쓰히로 같은 일본의 유명 만화가들의 작품은 정교하기는 한데 어렵대요.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작품은 마음으로 읽힌대요."

최씨는 "앙굴렘 조직위원장과 브뤼셀의 한 서점 주인으로부터 '좋은 책'이라는 칭찬을 듣고 어리둥절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들과 공동작업 제의를 받은 것도 이번 일정의 수확이다. 변기현씨는 "앞으로도 이들과 e-메일 등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영화 '올드보이'에 반했다는 프랑스의 유명한 만화가 뫼비우스와 만화캐릭터 스피루 시리즈의 '프티 스피루'의 작가 톰 필립을 만나 한국의 대중문화와 만화의 미래를 함께 얘기한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변병준씨는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고 최규석씨와 변기현씨는 각각 새로운 장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제 그림을 그려도 프랑스 독자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요. 밖에서 한국 만화에 대해 큰 기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아무리 힘들더라도 만화를 계속 그려야겠다는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게 이번 출장의 가장 큰 소득입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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