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은 어디 있나, 인간은 무엇을 믿으며 사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마틴 스코세이지(左), 멜 깁슨(右)

마틴 스코세이지(左), 멜 깁슨(右)

거장 앞에 수퍼 히어로도 평범한 사내가 됐다. 명감독 마틴 스코세이지(75)와 멜 깁슨(60)은 복면 쓰고 빌딩 숲을 날아다니던 앤드루 가필드(34)를 이 땅에 발불인 보통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거치며 수퍼 히어로의 아이콘이 된 그였다.

신작 영화로 돌아온 두 스타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사일런스’ #멜 깁슨 ‘핵소 고지’의 공통된 화두 #실화 소재 … 묵직한 생각거리 던져

영화 ‘사일런스’(28일 개봉)와 ‘핵소 고지’(22일 개봉)는 명감독과 가필드가 만났다는 것 외에 실화 소재로, 종교와 신념을 주제 삼은 것까지 일맥상통한다. 하나 두 감독이 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스코세이지의 ‘사일런스’가 장엄하고 묵직하다면, 깁슨의 ‘핵소 고지’는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다.

‘사일런스’ - 신념과 불신의 경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휴먼드라마 ‘사일런스’. 실화 소재로, 신념의 문제를 다루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 [메인타이틀 픽쳐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휴먼드라마 ‘사일런스’.실화 소재로, 신념의 문제를 다루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 [메인타이틀 픽쳐스]

‘사일런스’는 ‘고난의 순간 신은 어디 계신가?’라는 종교적 딜레마를 건드린다. 천주교 박해가 극에 달한 17세기 일본. 실종된 스승(리암 니슨)을 찾아 일본에 이른 로드리게스(가필드)는 선교 활동을 하다 막부 정권에 붙잡힌다. 예수를 새긴 성화를 밟고 배교(背敎)하라는 강요를 받지만,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신자들이 고문ㆍ학살 당하는 참혹한 광경, 그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신은 침묵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이 소용돌이의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실화를 기반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갱스터영화로 명성을 쌓은 스코세이지 감독은 여러 차레 “내 최종 목표는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혀왔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이후 그는 ‘사일런스’를 기획해왔다. 약 30년 만에 꿈을 이룬 노장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전했다. 2007년 『침묵』 영문판에 스코세이지는 “믿음이 의심을 낳고, 의심이 믿음을 풍성하게 한다. 의심에서 촉발된 외로움을 통해 영적 교감을 얻는, 그 고통스러운 역설의 길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서문을 남겼다. 이 찬사는 ‘사일런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핵소 고지’ - 불구덩이 속의 신념

멜 깁슨 감독의 전쟁영화 ‘핵소 고지’. 실화 소재로, 신념의 문제를 다루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판씨네마]

멜 깁슨 감독의 전쟁영화 ‘핵소 고지’. 실화 소재로, 신념의 문제를 다루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사진 판씨네마]

‘핵소 고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미국의 전쟁 영웅 데즈먼드 도스의 실화를 그린다.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를 신조로 살아가는 안식교 신자 도스(가필드)는 양심적 집총 거부자다. 군에 자진 입대한 그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총을 잡지 않는다. 군사재판 끝에 의무병이 된 도스는 핵소 고지(일본 오키나와 마에다) 전장에 투입된다.

‘사일런스’와 마찬가지로 ‘핵소 고지’의 도스 역시 내내 시험에 든다. 그는 집총을 거부해 휴가를 못 가고, 장교로부터 “적이 전우를 죽이면 어떻게 할 건데, 성경으로 적을 때릴 텐가?”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전장에 투입된 뒤엔 무기 없이 적에게 포위돼 최후를 맞는 악몽도 꾼다. 그저 총을 들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나 우리에게 ‘네 어머니의 초상에 침을 뱉을 수 있느냐’, 혹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히틀러 만세!’를 외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다.

‘핵소 고지’는 총성 너머 인간의 신념에 더 주목하는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깁슨은 영웅을 전쟁터로 소환하기 앞서, 인간으로서 도스가 종교적 신념을 굳혀 가는 과정을 영화 절반을 할애해 보여준다. 고집불통이 아니라 불굴의 신념이 그날의 기적을 만든 셈이다.

‘핵소 고지’엔 감독으로서 깁슨의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기와 신념에 대한 태도는 13세기 스코틀랜드 영웅을 다룬 ‘브레이브 하트’(1995)를, 집착에 가까운 사실적 묘사는 예수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마야 원주민의 사투를 그린 ‘아포칼립토’(2006)를 연상케 한다. ‘핵소 고지’는 전쟁 스펙터클만큼 도스의 신념 어린 표정 역시 생생하게 포착한다. 이 영화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 가필드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