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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자원 전쟁 중 4. 호주·브라질 광물 메이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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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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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는 필바라의 거대한 광산을 개발해 자금을 축적한 뒤 호주의 철광석 회사들을 경쟁적으로 인수합병(M&A)하며 몸집을 불렸다. 리오틴토는 철광산 개발회사인 필바라 아이언.햄슬리 아이언.로브 리버를 인수했다. BHP빌리튼은 2001년 철광산 개발회사인 BHP와 빌리튼이 합병해 탄생했다.

세계 철광석 해상물동량의 32%(2004년 기준)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업체인 브라질의 CVRD도 M&A를 통해 철광석 메이저가 됐다. 2000년 5월 소코이멕스와 사미트리 같은 중소 개발업체를 인수한 데 이어 브라질 3위 업체인 페테르코(2001년 4월) 와 2위 업체인 카에미(2001년 12월)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 업체로 등극했다.

메이저들은 자국 업체를 M&A할 뿐 아니라 해외 광산 확보도 주요한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다. 리오틴토는 CVRD의 본거지인 브라질에서 철광석.니켈.금 광산을 운영중이다. 칠레.남아공.라오스에선 동 광산, 미국에선 아연.금.동 광산, 인도네시아에서는 동.금 광산의 채굴권을 확보했거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BHP빌리튼 역시 브라질.뉴질랜드에서 철 광산, 페루.칠레에서 동광산, 콜롬비아에서 니켈.석탄 광산, 인도네시아와 쿠바에서 니켈과 코발트 광산, 남아공에서 석탄 광산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다. BHP빌리튼은 광물뿐 아니라 석유.가스등 에너지 개발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빅3' 메이저는 세계 철광석.광물 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자꾸 몸집이 커지면서 세계 철광석 해상 물동량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59.5%에서 2004년 73.6%로 증가했다. 당연히 입김도 세졌다. 게다가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철광석이 부족해지자 철광석 가격을 사실상 이들 메이저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철광석 메이저들은 지난해 포스코.신일본제철 등 전세계 철강업체들을 상대로 철광석 가격 75% 인상안을 내놓고 협상을 벌여 결국 관철시켰다. 이 인상폭은 사상 최대다.

철광석 메이저들의 영향력 확대는 철강업체의 구조조정까지 촉발시켰다. 다국적 철강업체 미탈스틸과 아르셀로, 티센크루프 등은 이들 광물 메이저와의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M&A를 통해 덩치를 불리고 있다. 세계 1위 철강업체인 미탈스틸은 최근 227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들여 세계 2위 업체인 아르셀로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M&A가 성사된다면 연 1억t 이상을 생산하는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 신일본제철의 세 배 짜리 초대형 철강업체가 등장하게 된다.

제철소를 짓기도 전에 철광석 메이저들과 장기 원료공급 계약부터 체결하는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현대INI스틸은 2010년 생산을 시작할 일관제철소에 쓸 철광석과 유연탄에 대해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 BHP빌리튼과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리오틴토와 BHP빌리튼은 호주를 세계 철광석 해상물동량 41%(두 회사의 물동량 합계)를 차지하는 최대 자원산업 국가로 발전시켰다. 광산업이 서호주경제생산에 기여하는 금액은 한해 140억 호주달러(한화 약 10조원)로 전체 서호주 국민총생산(GNP)의 25%, 수출액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니 호주 정부도 메이저를 적극 돕지 않을 수 없다. 서호주정부 산업자원부 짐 리머릭 국장은 "지난해 12월에 철도.부두 등 철광석 메이저들의 인프라 확장 계획을 빨리 승인해주기 위해 '원스톱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광산업계의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외국에서 채용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 광물 메이저들이 풍부한 자국 내 자원을 바탕으로 자본을 쌓고, M&A와 해외 광산 인수를 통해 몸집을 더욱 불리며 자국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게 되자, 정부까지 나서 메이저의 성장과 투자를 돕는 형국이다.

호주선 … 국책사업으로 광업 지원

호주 철광석 메이저의 강점은 단지 몸집이 크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선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광산업이 호주에선 첨단산업으로 통했다. 서호주 자원.에너지협회 팀 섀너헌(사진) 회장은 "노천 광산에서 돈을 번 호주지만 이제는 첨단기술 없이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연구개발(R&D)에 정부.기업.학계가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미개발 지역의 광물 자원을 찾기 위해 정부와 호주 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대표적인 국책사업으로 '글라스 어스(Glass Earth)' 기술을 개발중이다. 정부가 돈을 대고 정부산하 연구소와 대학.기업들이 참여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수십㎞ 지하에 어떤 광물이 얼마만큼 있는지, 지하 지형의 상태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3차원으로 유리알처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질 좋은 노천광산이 즐비한 호주에 '글라스 어스' 같은 기술이 꼭 필요한가.

"채굴 비용이 적게 드는 좋은 광산은 잇따른 개발로 점점 고갈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젠 탐사와 채굴에 누가 더 적은 비용을 들일 수 있는가로 나라와 기업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호주 외의 지역을 탐사하고 선점하기 위해서도 첨단 기술은 꼭 필요하다."

-채굴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호주 메이저 광물 기업들은 광물 수송 열차 바퀴가 과열되지 않도록 원격 통제하는 기술까지 적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광산개발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60%는 호주가 만든 것이다."

한국은 … 전략광물 확보 뒷걸음

우리 정부는 철광석.유연탄 등 6가지 광물을 '전략 광물'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산업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광물자원이면서도 대부분의 수요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들이다. 이들 광물에 대해서는 해외 광산을 많이 개발해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게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전략 광물의 자주개발률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유연탄의 자주개발률은 2004년 26%에서 지난해 22%로 떨어졌다. 아연도 38%에서 33%로 줄었다. 동(銅)은 7%에서 0.2%로 추락했다. 유연탄의 주요 수입처인 한전은 '비핵심자산을 정리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2000년까지 해외 투자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공기업인 대한광업진흥공사 등이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실탄'이 부족하다. 지난해 정부가 석유 및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석유 비축과 국내외 유전개발에 지원한 자금은 5000억원. 반면 광물 자원의 해외개발 지원금은 655억원에 불과하다. 광진공 관계자는 "고유가 덕분에 유전이나 가스전 개발에는 정부가 돈을 대주고 있지만 광물자원 개발 지원금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광진공의 자산은 3억5000만 달러로 광물 메이저 중 하나인 영국 앵글로아메리칸(425억 달러)의 1%도 안 된다.

세륨, 네오디뮴, 이트륨 등 이른바 '희토류'는 중국이 세계시장의 98%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름조차 외우기 어려운 이 광물들은 PDP TV.프로젝션 TV 등 한국의 전략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다. 광진공 이무영 자원정보부장은 "중국 전자업계의 기술 수준과 생산 규모가 우리와 대등해 졌을 때 중국이 희토류 가격을 올리거나 한국 공급량을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럴 경우 국내 전자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팀장=양선희 차장, 미국=권혁주.서경호 기자, 중국=최준호 기자, 유럽.카자흐스탄=윤창희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최지영 기자(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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