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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냐...알권리냐..."|「김대중 납치사건」이후낙씨 월간지회견 파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73년8월8일에 일어났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낙씨의 월간지회견을 계기로 당국과 언론간에 국익이냐, 국민의 알권리냐의 대치로 심각한 정치문제로 확대되고 당사자인 김대중씨가 재조사를 요구함으로써 법적·정치적·외교적 분쟁으로 14년 만에 재연되고 있다.
문제의 회견내용이「국익」에 손실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당국이 월간지의 인쇄를 강제로 막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농성이 계속됐으며 여기에 정치권이 개입, 사건은 더욱 복잡하게되었다.
정부측은 이씨의 회견내용이 그대로 게재될 경우 73년 당시 한일양국간에 공권력개입이 없었다는 식으로 정치적 해결을 본 김대중 사건이 다시 외교쟁점화합 가능성이 있고 이는 △우리정부에 새로운 외교부담이 되며 △공권력의 신뢰성에 손상을 주고 △대외적으로도 새삼 불필요하게 국가위신을 떨어뜨리게 한다는 논리를 펴고있는 듯 하다.
이에 대해 해당 월간지나 언론자유를 주장하는 측은 △국익손실의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성이 과연 있는지 의심스렵고 △ 「국익」에 대한 해석을 정부가 독점할 수 없으며 △국민의 알권리는 보호돼야하며 △사건진상규명을 통해 종국적으로 언론자유를 보장함은 물론 국익증진도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이런 논쟁과 대치 속에서 이미 이씨의 회견내용은 국내외언론을 통해 상세히 보도되고 현실적으로 정부측도 더 이상 발간을 저지할 실익이 없게 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요일인 27일 민정당이 ▲태우총재 주재로 긴급 당직자회의를 열고 정부가 언론탄압 인상을 준 것은 유감이며, 언론의 책임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 정부-여당의 문제 해결방식을 제시했다. 이어 문공부도 28일 회견게재·발간문제는 언론사 자율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제의 월간지들이 이씨 회견을 그대로 게재해 발간하게 됐다.
정부가 우려하는 「국익」문제는 이씨 증언에 대한 해석과 평가문제와 직결된다. 이씨 회견내용을「한국공권력이 김대중씨 사건에 개입됐다」 는 객관적인 증거로 삼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초점이 되는 것이다.
이씨는 『내가했다』 『내가 지시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씨 자신이 이 사건의 최고 책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객관적인 「증거」로 본다면 「공권력개입이 없었던 것」을 전제로 했던 한일양국 정부간의 사건 해결방식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되고 일본측이 재론한다면 다시 외교쟁점이 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전중정부장의 뒤늦은 증언은 「일단락」된 사건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셈이 되고 따라서 한일 양국 정부모두 미묘하고도 복잡한 외교부담을 다시 안게된다.
이 문제에 대한 국내의 정치적 쟁점은 차치하고, 일본으로서는 이미 비등해진 자국여론에 따라 「수사종결」 이 아닌 「중단」상태에서 수사 팀을 다시 가동, 진상을 규명한 뒤 그 결과를 근거로 하여 형식적으로나마 한국정부에 「항의」하고 그 답을 기다리는 외교적 수순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공권력개입이 없었다」 고한 양국의 합의가 이뤄져 사건이 종결된 터에 당시 고위직의 월간지회견발언이 이를 뒤엎을 새로운 「증거」로서 유효성이 있을 수 있느냐의 반론도 가능할 것 같다. 회견내용 중에 직접 자기가 지시했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의 회견으로 공권력개입이 있었다는 결론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전정부가 관련된 문제이고 △외교접촉에 앞선 진상규명의 단계에서 과거처럼 「물리적 수사 불가능」이라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으며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먼저 외교문제로 부각시킬 이유가 없고 △선대의 「외교결착」은 후대의 비판이 있더라도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으로 「존중」 되는 관례 등을 감안해 보면 과거와 같은 형태의 심각한 외교현안으로까지 발전될 가능성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일 외교상의 「약점」을 현 한국정부가 다시 안게될 개연성마저 피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김대중씨가 요구한 재조사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일양국정부가 현실적으로 재조사하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를 둘러싼 양국 내 정치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교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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