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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연중기획 중산층을 되살리자 <2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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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자리 줄어드는 제조업
충남 서산의 대산공업단지에 있는 삼성석유화학 공장. 이 공장은 컴퓨터가 돌린다. 직원들은 18개의 모니터를 보며 컴퓨터 상태만 점검한다. 그래서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 회사의 직원은 308명뿐이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해마다 자동화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늘어나는 서비스업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 삼성석유화학보다 매출은 23% 적지만 고용 인력은 10배가 넘는 3500명에 이른다. 정규직만도 1600여 명이다. 인근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합치면 에버랜드로 인해 생긴 일자리는 더 늘어난다.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다. 2001년 이후 5년 동안 제조업에선 일자리가 6만 개나줄었다. 반면 서비스업에선 195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서비스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2부를 시작하며

새해 벽두부터 '양극화 극복'의 방법론을 놓고 정치권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여당 일각에선 양극화 극복을 위해 증세를, 야당에선 감세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양극화를 극복하자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양극화 극복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극화'는 갈등의 담론(談論)이기 때문입니다. 양극화란 관점에 서는 한 가진자의 편이냐, 못 가진자의 편이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증세냐 감세냐 하는 논쟁도 그렇습니다. 증세론의 바탕에는 못 가진자의 분배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정부가 가진자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못 가진자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감세론은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좋아진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감세의 혜택은 가진자가 더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양극화란 관점에 서면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에도 휘둘리기 십상입니다. 표의 유혹에 끌려 못 가진자의 좌절과 불만을 자극하는 정치 공약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좌우 이념 대결도 격화할 것입니다. 올해 지방 선거,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로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가 신년 기획으로 '중산층을 되살리자'는 화두를 던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양극화 대신 중산층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증세냐, 감세냐'하는 논쟁은 공허해집니다. 가진자도, 못 가진자도 아닌 중산층을 돕는 조세정책을 펴면 되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에선 좌우 이념 대결도 극단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제 중산층을 더 두텁게 할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그 답은 일자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장애인이나 극빈층은 정부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 여건상 복지 지출을 무작정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큰 정부'의 폐단을 막으면서 중산층을 키우는 정도(正道)일 겁니다.

일자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서비스 산업입니다. 제조업은 더 이상 중산층에 좋은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선 중앙일보의 신년 기획 시리즈 마지막 회의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업 위주로 고용의 숲 무성하게'였습니다. 이번에 중앙일보는 왜 서비스 산업이 중산층 고용의 숲이 돼야 하는지를 짚어봅니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올해 연중 기획으로 중산층을 북돋우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독자와 함께 꾸준히 모색해 나가겠습니다.

① 왜 서비스 산업인가

지난해 12월 13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제3차 서비스 산업 장관회의'. 어린이집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보육료 상한선 제도를 바꾸자는 게 핵심 안건이었다. 9개월 전 정부가 이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단체 반발로 미뤄졌던 터였다.

재정경제부가 고심 끝에 이날 내놓은 절충안은 '2007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유아에게 월 3만원씩 기본 보조금을 주되, 이를 안 받겠다는 곳에는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보육료의 상한선(연령.시설에 따라 1인당 15만3000~36만2000원)을 적용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보조금을 받는 곳은 상한선을 그대로 두고, 안 받겠다는 곳만 없애자는 것이었다. 재경부는 이럴 경우 전체 보육시설의 10% 정도가 보조금을 안 받는 고급 시설로 탈바꿈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보육시설을 지으려는 투자가 일어나고, 여성의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안건도 결국 보류됐다. 130여 개 여성.시민단체가 "계층 간 위화감을 심화시키고 보육의 공공성을 해친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은 "보육료 상한선 규제를 풀면 새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며 "영리법인에 병원.학교 설립을 허용하자는 것도 같은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공공성을 강조하면 우파로부터, 영리법인을 허용하자면 좌파로부터 공격받아 정부가 일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중산층에 걸맞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민간이 서비스 산업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그러나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대립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평등주의 좌파적 시각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본부장은 "서비스 산업의 규제만 풀어 줘도 당장 투자가 일어나 중산층의 일자리가 생길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에선 더 이상 중산층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힘들게 됐다. 매출액 100억원을 올리는 데 고용한 인력만 비교해 봐도 그렇다. 석유화학이나 정유 등 장치산업은 매출액 100억원당 고용 인원이 5명도 안 된다. 그나마 현대자동차가 20명이다. 그러나 병원.관광회사.호텔 등의 고용 효과는 100명 안팎에 이른다.

서비스 산업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전략은 필요하다. 음식.숙박업이나 도소매업은 포화 상태다.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자면 의료.교육.물류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 특별취재팀=정경민(팀장).김종윤.김원배.윤창희.김준술.손해용(이상 경제 부문), 허귀식(탐사기획 부문),

정철근(사회 부문), 박종근.변선구(사진 부문) 기자, 한상원 인턴기자(고려대 2년)

*** 바로잡습니다

1월 31일자 1면 '서비스 산업을 고용의 숲으로' 기사에 나오는 그래픽 중 조선호텔의 '매출 100억원당 고용인원'은 82명이 아닌 142명으로 바로잡습니다. 호텔 측은 당초 고용인원(비정규직 포함)을 1214명으로 밝혔다가 이를 2108명으로 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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