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칼퇴근’으로 삶의 질 높이기, 임금·생산성 감소가 숙제

중앙선데이

입력

일·가족 두 토끼 겨냥한 대선 공약 虛와 實

‘칼퇴근’으로 상징되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선주자들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직장에서의 자아실현 못지않게 가족 관계와 생활의 여유를 중시하는 30~40대와 여성 유권자들을 겨냥한 행보다. 여기에는 만성적인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주 52시간, 퇴근 후 SNS 금지 등 #근로시간 줄여 일자리 창출 시도 #교육·주거 등 개혁 맞물려야 실효

특히 5년 전 대선 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이에 자극받은 대선주자들이 한발 더 나아간 구체적 공약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미 주 52시간 준수, 퇴근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업무 지시 금지 등이 제시된 상태다. 대선주자들은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일과 가정, 직장 생활과 사생활이 양립하도록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학계와 노동계에서도 이들 공약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예산 확보 등 공약의 구체적 실현 방안이 부족해 앞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잖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 공약의 허와 실을 Q&A로 짚어봤다.

누가 어떤 공약을 내놨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주 52시간을 준수하고 연차휴가를 모두 쓰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0.8배만 주는 초과근로수당도 법대로 1.5배씩 제대로 지급하도록 하고 위반하면 엄중 처벌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근로감독관 1만 명 충원 계획도 내놨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주 40시간, 연장근로 포함 주 52시간 제도를 확립하고 ‘야근 없는 날’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 공약 중 하나로 이른바 ‘칼퇴근법’을 제시했다. 연 단위로 초과근로시간 한도를 정하고 각 기업이 이를 공시하도록 한 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으로 칼퇴근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퇴근 후부터 다음날 출근까지 최소 11시간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퇴근 후 SNS를 통한 업무 지시도 모두 초과근로시간에 포함시켜 ‘돌발 노동’을 금지시키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A. 대선주자들은 주당 근로시간이 최대 68시간인 현실은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 휴일근로 16시간이 더해진 실제 근로시간을 법에 맞게 주 52시간까지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남 지사의 ‘야근 없는 날’이 긴급 처방 효과를 가장 확실히 낼 수 있는 공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도록 한 문 전 대표의 공약도 매우 현실적이란 평가다.

문제는 여야 입장이 맞서면서 정부 개정안조차 국회에서 5년째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연장근로 8시간 인정, 휴일근로수당 가산비율 등 쟁점이 산적해 여야 합의→법안 통과→공약 실현 토대 마련→재원 확보→현장 적용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는 분석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의 격차가 큰 만큼 대기업과 정규직의 1차 노동시장은 유연화하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2차 노동시장은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은 줄이고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으로만 접근할 경우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임금은.
A. 근로자 입장에선 줄어드는 근로시간만큼 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부담이다. 기업 입장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성이 떨어질까 우려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의 임금 부담이 커지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로 인해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소득 문제와 생산성 유지에 대해 노사정 차원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지 않는 한 이들 공약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 감소라는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초과근무수당 비중이 큰 임금 구조를 통상임금 위주로 바꾸는 게 선결 과제”라며 “근로시간을 줄이는 만큼 노동의 밀도는 높이는 노사 간 합의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에선 제조업체 작업장에 개인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시켜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식으로 생산성을 관리하고 있다.

일찍 퇴근하면 삶의 질 올라갈까.
A. 근로시간 단축을 정착시킨 북유럽 국가들은 늘어난 여가시간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되면서 근로자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현실은 다르다. 현행 임금 구조에선 근로시간을 줄일 경우 임금 감소가 사실상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높은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칼퇴근이 ‘투잡 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근로시간 단축이 교육·주거 등 포괄적인 제도 개혁과 맞물려야 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퇴근 후 SNS 제한 실효성은.
A. 4차산업 시대가 도래한 만큼 업종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시공간 제약이 없는 지식정보산업에 전면 도입될 경우 되레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 업무용 e메일 사용 금지를 검토했던 프랑스도 부작용 우려가 커지자 법제화하지 않고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 측도 “법제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은 물론 사무직·연구직 등 직무 특성도 두루 감안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NS의 제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제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주완 변호사는 “일부 기업의 현상을 제도로 묶으면 노동시장이 경직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기업의 비용 부담만 늘리는 포퓰리즘 공약이 되기 쉽다”거나 “퇴근 후 SNS 업무 지시를 금지시키면 출근 후 집에서 오는 SNS도 막아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용환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