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본 시집『강』 최승호<시인>|새벽 길가서 작은 꽃 보는 기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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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가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는 시인들 자신도 알지 못한다. 시심은 어쩌면 영원한 비밀, 그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드물게 흘러나오는 마음을 언어의 그릇에 잘 담을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순수한 마음을 변질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나 (아)에서 비롯된 지나친 욕심이거나 허세, 또는 타인에 대한 경쟁의식이나 의무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상의 예술이 무아의 상태, 또는 「나」라는 생각을 잊어버린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말은 우리가 체험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아의 예술을 모두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지의 사람보다 내가 현실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시심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광본 시집 『강』의 새로움은 개인적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시심의 깨끗한 드러남이다. 언어의 매만짐과 시의 깔끔함에 앞서서 이 시심은 내가 돌이켜 보아야할 자리이기도 하다.
『강』은 잔잔하고 투명한 말로하여 아무런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알아 듣기 쉽다. 그는 마음을 전하는데 있어 고요하고 투명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듯 하다.
이 고요함이 주는 효과로 하여 『강』에서는 「얼음 풀려 모래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존재의 모습은 투명함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대부분 더 큰 충격의 효과를 생각하는, 이 거친 시대에 우리가 그의 시를 만나는 것은 고요한 새벽 길가에서 작은 궂을 새로 보는 기쁨과 같은 것이다.
「한 떨기 꽃이 피어도 온 우주가 흔들린다」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기쁨은 어쩌면 이런 작은 것들과의 만남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강』에 드러나 있는 세계는 우리가 처음 보는 세계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새롭게 드러내 준다. 그의 세계는 그가 함께 꿈꾸어야할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시인은 끔찍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조차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는 정말 젊다. 습관의 제자리걸음을 하며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밥줄에 옭매인채 일하는, 노동이 즐겁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는 감히 꿈을 꾸자고 말한다.
그 꿈은 혼자의 꿈이 아니며 보다 넓은 삶, 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함께 둥글게 퍼져 나가는, 하나이면서 모두인 세계를 꿈꾸는 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꿈이 좌절을 겪을 때조차 어떤 큰 사탕에의 믿음으로 지탱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을 나는 인간에 대한 그의 든든한 믿음· 대립을 넘어서 있는 포용력으로 보고 싶다. 꿈의 떨림은 그에게 때로 불안을 준다. 그러나 그 불안은 이미 그의 껴안음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의 품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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