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의확립을 위한 긴급좌담|「산업사회의 윤리」바로서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근 우리사회에선 전환기의 감등이 전통윤리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을 휩쓴 노사분규와 일부 대학가의 움직임에서 표츨된 이같은 갈등과 의구는 민주화와 함께 새로운 윤리질서의 확립을 시대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윤리질서의 위기진단과 새 질서확립의 방안을 긴급좌담으로 찾아본다.
공=6·29선언을 계기로 우리사회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민주화의 전통이라고 할수있겠읍니다만 그동안 억눌렸던 각계의 온갖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미처예상치 못했던 인간적 갈등, 정신적 혼돈, 가치관의 마찰도 두드러집니다.
최근 노사분규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근로자들의 사업주에 대한 인격 모독행위나 현민빈소 이전을 둘러싼 물의등은 그런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일부에선 「인륜의 위기」라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두분께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손=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인위적 제도로 법과 윤리와 예의가 있지요. 그중 예의는 가장 강제력이 약할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실질적인 손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해서 인간관계를 해치지요. 요즘 문제가 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 예의에 관계된 것이 아닌가해요. 실질을 더 중시하는 미국같은데서 같은 사건이 났다면 별것아닌 「사소한 문제」로 지나갔을 것이 많은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실질 못지않게 감정과 기분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큰 충격을 받는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세대차입니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엔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큰 차이가 있읍니다.
이=격변하는 사회일수록 세대차이가 크게 마련입니다. 과거에는 「10년이면 벗」이라 할만큼 비슷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오래 유지됐지만 지금은 「쌍동이도 세대차」라고 할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노사문제나 학원 문제의 주역들은 대체로 20대 아닙니까. 거기다 그동안 그들의 욕구나 주장이 제도적으로 표출·수용될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일부 과격한 양상도 나타나고 있으나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최근 현민빈소·인촌묘소 이전 시비갈은 것은 예의의 문제이면서 근본적으로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사제의 의리, 사자에 대한 예의라는 전통윤리의 측면에서 사회에 큰충격을 준것 같습니다.
손=저는 그것을 「백이숙제콤풀렉스」라고 부르는데. 요즘 지조에 관해 지나치게 결벽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우 엄격하고 독단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여지없이 매도해버리는 풍조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남을 비판할때는 갈은 기준으로 자기도 비판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입니다. 이런데 요즘보면 남을 비판하면서 자기는 반성할줄 몰라요.
한마디로 인격의 미성숙이라고 봅니다.
이=일제-해방-분단-장기독재-혁명을 거치며 우리사회 지도층이 올바로 지조를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읍니다. 오죽하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였다 한다고 「간쓸선생」이란 말까지생겼겠습니까. 그 반작용으로 젊은 세대사이에 지조에 대한 강한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도 볼수 있어요. 그러나 역사와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공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오만을 확대해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의 독특한 제도인 상소제도에서도 상소를 올리는 사람은 먼저 자기가 그런 상소를 낼 자격이 있는가를 반성합니다.
그러고는 목욕재계하고 상소문을 쓰는데 고금의 사례, 고전의 명구들을 주로 인용해 훌륭한 문장을 만듭니다. 감정적인 표현같은것을 피해요. 그리고 반드시 전설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받는 사람도 아량으로 그것을 다 수용합니다. 심지어 임금보고 「자결하라」는 상소까지도 받아들여지고 상소한 사람이 오히려 중히 쓰입니다.
요즘에도 본받아 살려 쓸만한 정신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손=특히 자기변호를 할수없는 사음에 대한 일방적 비판은 옳지 않습니다. 사자에 대한 연민은 동서고금산자의 도리아닙니까.
공=전통윤리를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서구적가치관을 신봉하는 젊은세대사이에 간격이 큰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예의를 제대로 차리지 않는 것이나 신뢰와 존정심이 부족한 것등도 그같은 갈등의 사례인데, 그 원인이 어디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손=두가지 점에서 현재의 사태는 모두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하나는 기성세대가 젊은세대에게 올바로 예의·윤리교육을 시켰느냐 하는 점이고, 둘째는 기성세대 자신이 예의와 윤리를 제대로 지키고 있느냐하는 점입니다.
요즘 근로자들의 직장교육에 출강하며 느낀겁니다만 노사분규의 핵심은 저임이아니예요. 오히려 분규는 임금이 비교적 높은 곳에서 더나요. 『월급을 이만큼 주는데 시키는대로 하지 무슨 잔소리가 많으냐』하는 식의 근로자를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는 풍토에 더 문제가 있어요.
이=사실 그동안 우리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에서 「일류대학 가라」는 목표는 있었지만 「인간이 되라」는 목표는 없었지요.
손=단순히 형식적인 교육의 측면에선 우리사회 도덕교육이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잠재교육입니다. 초·중교에서 연구수업을 한다고 합시다. 틀리는 답까지 준비해 놓고, 심지어는 「미리 준비를 안했다」는 거짓대답까지 준비시켜놓고 보이기위한 수업을 합니다. 「기성세대는모두 위선자」라는 혐오와 불신이 생겨납니다. 아무리 겉으로 거룩한 소리를 해도 코방귀를 뀌는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됐어요.
공=기성세대와 걺은 세대, 전통윤리와 산업사회의 서구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물고 새시대의 한국적 윤리를 세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같습니다. 특히 서구적 합리주의를 들여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오늘엔 인간적 가치가 존중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 갈수록 더 중시 될 수밖에 없읍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연 우리 전통윤리, 가치관의 정리·수용이 문제되겠는데요. 이웃 일본의 경우 독특한 「일본정신」으로 정치·정제를 자기들 방식대로 매우 잘 끌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손=일제 35년 식민지배가가져온 보이지 않는 큰 피해가 우리 전통의 단절입니다. 무의식중에 우리전통에 대한 비하·경시가 싹텄고, 그 결과 우리 좋은것을 너무 쉽게 버린게 많습니다. 이제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입장에 섰으므로 우리 좋은 것을 살리고 남의 좋은 것을 수용하는 자세로 새로운 우리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전통윤리 가운데 좋은게 참 많아요. 그러나 합리성이 약한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사대」도 「국수」도 피해야지요.
이=일본의 전통윤리가 「사무라이정신」이라면 우리는 「선비정신」이라고 할수 있어요.그밖에도 멀리는 홍익인간의 이념에서부터 화탕도·불교·유교·실학·동학등 우리에겐 많은 정신적 유산이 있어요.
다만 이것들이 연결이 잘안돼있는데 이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축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기서 새로운 한국적윤리, 「한국정신」의 도츨·.형성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손=요즘 상황과 관련해서 저로 우리 전통윤리중 지도자의 윤리를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거 우리사회에서 지도자는 청빈이 그 필수 덕목이었습니다. 지도자는 물질적 욕망을 버리는 금욕의 자세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돈은 결코 고급의 가치가 아니며 명예나 권력과는 분리돼야 옳습니다.
이런 전통이 근래 변했어요. 셋이 같이 붙어가는것으로 알아요. 우리사회 갈등의 큰 요인이 거기있습니다. 사화전체로서도 돈보다 더 고급의 가치, 예컨대 인격이 더 존중받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이=「선비정신」에서 청빈은 핵심요소지요. 돈은 말리라고 천시했어요. 우리사회가 60년대 이후 지나친 물량주의에 휩쓸렸는데 이제는 수정·극복돼야합니다.
공=일본의 번영과 한국등 유교국가의 경제성장이 세계의 주목을 끌면서 유교윤리가 재평가되고 있지요. 삼강오륜같은 것도 따지고보면 일방적 강요가 아닌 쌍무관계의 규정이라고볼수 있읍니다. 가령 「군신유의」라는 것도 신하의 충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군주의 신하에 대한 예를 의의 바탕에서 실현하자는 뜻입니다. 어떤 면에선 서구적 합리성보다 더 합리적이지요. 수기치인의 윤리·교육의 강조같은 것은 유파전통의 긍정적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치관의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적 윤리를 세우는 일이 앞으로 순조로와야 할텐데요.
손=낙관합니다. 우리사회는 어느 의미에서 놀랍게도 평등한 민주사회입니다. 서양에가서 한10여년 살아봤읍니다만 서양같은 철저한 신분사회·계급사회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것 없습니다.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의 길이 열러있는 유교전통의 영향입니다. 앞으로도 돈이 없어 교육을 못받는일만 없도록 제도화하면 우리사회에서 계급의 대립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또 우리 젊은이들이 건전합니다. 기성세대들보다 오히려 윤리적이라고 할수있어요. 평등의 의식이 매우 강하고 가난한자, 억눌린자에 깊은 이해를 갖고있읍니다.
기성세대의 위선에 비판적이고 다소 성급하며 현실을 갈 모르는 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건전해요.
특히 우리전통에 대한 회귀현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근래 일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스럽습니다.
이점에서 저는 요즘 일부에서 나타나는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이제 비판하고 싶어요. 외래사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거야말로 가치관의 종속, 정신적인 매판아닙니까. 일부 일본을 부러워합니다만 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고 사회에 인도주의의 전통이 없다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평가를 달리합니다.
공=오늘의 사회는 이익사회입니다. 노사관계는 그대표적인 것인데 이익사회의 윤리가. 전통사회의 그것과 같을수는 없지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미풍량속은 이익보다 중요할수 있읍니다. 양자를 어떻게 조화하는가가 요체입니다.
손=전통사회는 소사회였고 정의사회였습니다. 현대는 대형화된 이익사회입니다. 사회정의의 원칙안에서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윤리의 기본율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집니다.
유교의 「기소부욕을 물시어인」의 가르침은 그대로 기독교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거든 남을 대접하라」는 계명과 같은 것입니다. 유교 전통윤리의 인도적인 요소가 많이 망각되고 있는데, 이는 다시 살려야합니다.
이=요즘은 스승·교수라고해서 제자·학생들의 비판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몰인정하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사회발전을 위해선 필요해요. 『아버지가 밉다고 내좇기냐』하는 식으로 해석하고 반응해서는 발전이 없지않겠어요.
손=다만 젊은세대가 기성세대의 기분까지도 이해해서 예의를 갖추고 불필요한 감정을 건드리는 일 없이 실질적인 자기주장을 펼수도 있을텐데… 아쉬움은 있읍니다.
공=가치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행동의 방법론상 반성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인격적 성숙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에 접근하는 자세는 언제 어디서나 원칙인것 같습니다. 공자도 『내도를 일이관지하여 서』라고 했읍니다만 서로 관용의 정신을 갖고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긴시간 감사합니다.<정리=문병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