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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성기 형성수술 받지 않은 성전환 30대 男, 성별 '남'→'여' 법원 결정

중앙일보

입력

여자 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의 주민등록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허가한 국내 첫 법원 결정이 나왔다.

청주지법 영동지원(재판장 신진화)은 고환만 제거한 채 여자 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30대 중반의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꿔달라”는 신청을 허가했다고 16일 밝혔다.

신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A씨의 성 정체성이 여성성이 강하며 외부성기 수술을 마치지 않았어도 여성의 신체를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여성으로서의 성별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있어 외부 성기 형성수술은 필수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여성성을 보여온 A씨는 학창시절 인형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남학생에게 호감을 가졌다. 고교 졸업 이후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는 등 외관을 여성으로 꾸몄다. 2005년 성주체성 장애진단을 받은 A씨는 여성호르몬 요법과 함께 2014년 고환 절제ㆍ유방확장 수술을 했다. 현재 직장에서는 가족관계등록부상 남성인 사실을 밝히고 여성으로 대우 받고 있다.

대법원은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요건 중 하나로 “성전환자는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때문에 과거 법원은 외부 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을 불허해 왔다. 그러다 2013년 3월 서울서부지법이 외부 성기 형성수술을 받지 않은 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신청인의 성별 변경을 정정해 주면서 유사 사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는 “성기 형성수술이 덜 어렵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했다.

2015년 개정된 가족관계등록예규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지침에는 ‘자격있는 의사의 판단과 책임 아래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해 여전히 성전환 수술을 중요 단서로 달았다.

신 부장판사는 “외부 성기 형성수술은 현대 의료기술상의 한계와 후유증 등 위험이 커 수술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전환자가 많다”며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와 달리 가족관계등록부에 남성으로 등재돼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 있어 외부성기 수술 요구에 대한 위헌성을 확인했다”며 “성전환자의 인권 증진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 “외부적 성징을 변형하는 수술을 받아 다른 성별의 외양과 근접한 상태를 요구한다”는 성전환자법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 밖에 영국과 스페인ㆍ스웨덴ㆍ핀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도 성별 결정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영동=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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