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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절망의 도시 부다페스트에 남아있는 유일한 미국인 특파기자로서의 생활은 때로는 무섭기도하고 때로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한 민족이 무참히 살해되고있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자니 한사람의 미국인으로서나 한사람의 기자로서 그저 자신의 무능력이 한스럽기만 하다.』
헝가리 의거가 소련군의 탱크아래 무참히 진압되고 있던 부다페스트에서 56년11월15일 UP통신의 「래슬·존슨」기자가 보낸 기사의 첫머리다.
그는 피와 공포의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죽음과 검열을 무릅쓰고 자유를 위한 헝가리 인민의 투쟁을 취재, 전 세계에 알렸다.
소련군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37일간의 그의 보도활동은 퓰리처상으로 보상되었지만 외롭게 싸우던 헝가리인들은 무한한 용기를 얻을수 있었다.
미국 스크립스-하워드계 신문의「어니·파일」은 작은 몸집의 노기자였다. 그는 44년 여름 「아이젠하워」장군 지휘하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종군했다. 비오듯 퍼붓는 총탄을 무릅쓰고 그는 총대신 펜을 들고 해안에 상륙, 연합군의 최선두 대열에 끼었다.
어느날 그는 연합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고 그것을 기사화했다.
그 기사는 45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나 바로 그해 태평양전선까지 좇아왔던 그는 이강도에서 일본군 저격범이 쏜 흉탄에맞아 순직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뉴스가 있다면 어느곳이나 찾아가는 것이 기자다. 기자정신이랄까.
대만 자립만보의 이영득·서로두기자가 자유중국기자로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들어갔다.
이들은 자유중국정부의 허락없이 중공취재에 나섰기 때문에 어떤 조치가 내릴지 궁금하다.
40년을 평기자로 일관했던 르몽드의「잠·슈뵈벨」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의 어려움이 싫으면 그만두라. 그러나 기자의 사명은 인간성을 발전시키고 어떤 압력이나 감정에도, 어떤 권력자와의 친분에도 반항하는데 있다.」
국토분단과 체제의 장벽은 마찬가지지만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일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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