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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제국’ 월가까지 상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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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손정의(60·사진)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거침없는 ‘인수·합병(M&A)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인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 그룹이다. 소프트뱅크는 15일 공식 자료를 내고 “포트리스를 33억 달러(약 3조76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는 지난 13일 기준 시가총액인 23억 달러에 38.6%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4조에 인수
곧 출범하는 ‘비전펀드’와 결합 땐
1700억 달러 규모 투자사로 부상
IoT·인공지능 사업에 승부 걸 듯

포트리스 인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업종과 시기가 소프트뱅크가 조만간 출범시키는 1000억 달러(약 114조원)규모의 ‘비전펀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비전펀드를 만들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펀드의 절반인 500억 달러를 미국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해 관심을 받았다.

현재 700억 달러 수준인 포트리스의 자산을 비전펀드와 합하면 소프트뱅크는 17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글로벌 투자사로 부상하게 된다. 결국 전문적인 투자사 인수로 비전펀드를 뒷받침해 차세대 격전지인 사물인터넷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손 회장은 이날 “이번 인수는 곧 설립되는 비전펀드와 함께 대담한 투자와 장기적 성장이라는 우리의 다음 성장전략인 ‘소프트뱅크 2.0’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포트리스 경영진의 폭넓은 경험, 세계 수준의 투자 플랫폼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 운영 수장으로 포트리스 채권 트레이더 출신인 라지브 미스라를 영입했는데, NYT는 미스라가 이번 포트리스 인수의 주역이라고 전했다. 인수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손정의에게 1000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다(joke). 소프트뱅크는 사모펀드 회사나 다름없고 그는 1조 달러를 굴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포트리스 인수 소식을 전하며 “소프트뱅크의 정보기술(IT)기업 답지 않은 야심 찬 행보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창립 35주년을 맞은 소프트뱅크는 늘어가는 부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 투자와 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7월엔 무려 234억 파운드(약 33조원)를 쏟아부어 세계 2위 반도체 설계기업인 영국의 ARM을 인수했고, 2013년엔 미국 3위 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를 216억 달러(약 25조원)에 사들였다. 반도체와 통신은 사물인터넷의 핵심 분야다. 투자은행 맥쿼리에 따르면 ARM과 스프린트 2개 기업이 소프트뱅크 기업가치의 36%를 차지한다.

소프트뱅크의 광폭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뚜렷이 갈린다. 주로 사내 현금과 대출로 인수 자금을 대다 보니 이미 지난해 3월 현재 순부채가 9조3528억엔(약 93조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투자설명회에서 “앞으로 대형투자는 펀드(비전펀드)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 기업에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이코스모증권의 가와사키 토모아키 연구원도 “아직까지는 손 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불안보다 더 크다”며 “비전펀드가 실제 결과를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컬럼에서 “포트리스의 인수로 비전펀드의 ‘비전’은 줄어들고 ‘펀드’성격만 강해졌다”고 우려했다. 이 매체는 “비전펀드는 IT 스타트업에 공개적으로 투자하는 벤처펀드·공모펀드 성격이 강한데, 포트리스는 주로 사모로 부동산과 채권에 투자했으며 실적 부진과 고객 이탈로 고전했다”며 “펀드 운영의 명확한 방향과 원칙을 설정하는 게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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