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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빠뜨린 러시아 배 잡아라" 해경 71시간 추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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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6일 오전 9시, 제주 해양경찰서에 긴급 지령이 떨어졌다. 묵호 앞바다에서 원목 2000여 개를 빠뜨린 뒤 도망쳤던 러시아 선적 원목 운반선 투멘호(TYUMEN.4516t)를 나포하라는 지시였다. 러시아 울가항을 출발해 중국 따이산으로 항해하던 투멘호는 23일 오전 10시쯤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동쪽 68.5㎞ 해상에서 배가 기운다며 조난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 해경의 함정이 도착할 무렵 선체가 바로잡히자 그대로 공해 쪽으로 도주했다. 해경은 현장에 떠다니는 원목을 수습하는 한편 레이더를 통해 투멘호를 추적했다. 조난 신호를 보낼 정도로 선체에 문제가 있었던 탓에 속도를 못 낸 투멘호가 제주 해역에 들어오자 나포 작전이 시작된 것.

인근 해역을 순찰 중이던 3000t급 경비함 두 척과 1500t급 경비함 한 척이 곧바로 출동했다. 경비함들은 20분 만에 화순항 남쪽 102㎞ 해상에서 투멘호를 따라잡아 항로 변경을 지시했다. 투멘호는 그러나 해경의 지시를 무시한 채 중국 쪽으로 도주했다.

수차례의 경고방송이 통하지 않자 해경은 결국 물리력을 동원했다. 경비함들이 앞뒤로 막아선 뒤 경비함에 탑재된 헬기와 보트로 중무장한 10명의 특공대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13명의 선원들은 모두 조타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 버텼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선상 진압작전은 특공대원들이 창문을 깨고 조타실을 장악하면서 25분 만에 막을 내렸다. 투멘호가 조난신호를 보낸 시점부터 71시간 30분 만이었다.

제주 해경은 오후 7시 남제주군 화순항 앞으로 투멘호를 압송해 정박시키고 선장 키리예프 올레그(42)씨 등 2명을 공유수면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화순파출소로 연행해 조사를 시작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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