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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쟁투쟁 19년 만에 집권당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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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자지구 남쪽의 칸유니스 지역에서 하마스 지지자들이 26일 거리로 나와 하마스의 팔레스타인 총선 압승을 축하하고 있다. [칸유니스 로이터=뉴시스]

팔레스타인 정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슬람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25일 10년 만에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마스의 사미 아부 주리 대변인은 "우리가 과반인 75석(전체 132석)을 확보했다"며 "지역구 66석 중 최소 43석, 66석이 걸려 있는 비례대표 투표의 45% 이상을 득표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 쿠레이 총리 내각 총사퇴=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는 집권 파타당 관계자들도 패배를 시인했다. 아메드 쿠레이 총리 내각은 총사퇴했다. 지난해 자치정부 수반에 당선된 마무드 압바스는 "선거 결과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화정책 추진이 어려워지면 중도 사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승을 거둔 하마스는 의회뿐 아니라 자치정부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사퇴 의사를 밝힌 쿠레이 총리는 "압바스 수반이 하마스에 새 정부 구성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법에 따르면 자치정부 수반이 원내 다수당에 내각 구성을 요청한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야는 파타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타당은 하마스가 주도하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27일 오전 2시(한국시간) 이후 발표될 예정이다. 출구 조사에선 파타당이 과반 의석은 확보하지 못해도 제1당의 위치를 지키고, 그 뒤를 하마스가 바짝 추격할 것으로 예측됐다.

◆ 변화 요구 거세=하마스가 예상을 완전히 뒤집고 팔레스타인 최대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변화를 갈구하는 유권자들의 요구가 워낙 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994년 자치정부 출범 이후 12년째 권력을 장악해 온 파타당의 부패와 무능함에 염증을 느껴왔다. 이 때문에 강경투쟁을 벌이면서 서민을 위한 구호활동도 함께 펴온 하마스에 유권자들의 지지가 쏠린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단계별 중동평화안(로드맵)의 실패도 한 원인이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등 진전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와 이스라엘 본토 및 정착촌을 분리하는 장벽 설치를 계속하고 있어 대다수 팔레스타인 주민은 로드맵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 평화협상 위기=하마스의 충격적인 압승으로 5년째 중단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뇌사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하마스는 무장투쟁과 함께 유연한 실용 정책도 일부 내놓고 있다. 하지만 ▶동예루살렘 수복▶수감자 석방▶정착촌 완전철수▶분리장벽 폐지 등 핵심 쟁점에서는 강경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대행은 3월 총선을 끝내고 본격적인 평화협상을 시도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국경을 일방적으로 획정한다는 계획이다.

양측 간에 전면적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메르트는 "하마스의 의회 진출은 용인하겠지만 자폭공격을 주도하는 세력의 자치정부 참여는 허용치 않겠다"고 못 박았다.

미국은 테러단체로 규정한 하마스의 총선 승리에 긴장하는 모습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상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선거 결과가 보도된 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하마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라이스 장관은 "정치에 한 발을 담근 채, 테러에 또 다른 발을 담글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은 이러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75%가 웃도는 투표율을 보였고 아랍세계의 모범이 될 만한 민주선거로 평가되는 이번 총선 결과가 외세에 의해 거부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하마스는

교사 중심의 온건 개혁단체로 출발
인티파다 후 자폭 등 강경투쟁 주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무장저항조직이자 사회운동단체다. 그러나 "무장투쟁만 주도했다면 하마스가 이번 총선에서 이 같은 지지를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아랍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슬람저항운동'을 의미하는 아랍어 앞글자를 모은 하마스는 '열정'이라는 뜻이 있다.하마스의 기원은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메드 야신 등 하마스를 세운 7명의 지도자는 이집트에 뿌리를 둔 온건 무슬림형제단 출신으로 당시 대부분 학교 교사였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점진적인 사회.정치 개혁을 추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대규모 민중봉기가 발생하자 이들은 행동방침을 담은 성명서를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했다. 성명서 위에 '이슬람저항운동'이라고 적었는데 그 앞글자를 모은 하마스가 조직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인티파다는 그 뒤 6년간이나 지속됐다. 갑자기 등장한 하마스가 주도면밀하게 장기 저항을 이끌자 일부에선 야신을 '역공작을 위해 이스라엘이 보낸 첩자'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12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인티파다를 거치면서 하마스는 무장단체로 변신했다. 자살 폭탄 공격과 기습을 담당하는 전위부대인 이즈딘 알카삼 여단이 산하 단체로 조직됐다. 이즈딘 알카삼 여단은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인 공격에 맞선다며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하마스는 97년 말 국제사회로부터 테러단체로 공식 지목됐다.

2000년 9월 이래 계속되고 있는 제2차 인티파다에서도 하마스는 자폭 공격을 앞세운 저항과 무장투쟁을 주도해왔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2004년 최고지도자 야신과 후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를 차례로 표적 암살했다. 때문에 하마스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우리가 지도자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무력투쟁을 계속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라고 주장한다. 하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점령한 모든 영토의 수복이다.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정치투쟁 외에 무력공격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마스의 최대 강점은 대중의 지지다. 무력투쟁 외에도 학교.병원.종교시설을 건설하고 구호 활동을 전개해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다.

집권 파타당이 원조자금을 해외에 빼돌린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부패한 것과는 달리 하마스는 깨끗하다는 이미지다.

현재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는 베일에 싸여 있다. 야신에 이어 란티시까지 이스라엘 군에 표적 암살되는 바람에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칼리드 마슈알이 지휘하는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1월 27일자 10면 '팔레스타인 총선 하마스 돌풍' 기사 중 ' "비례대표 66석 중 45석 이상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는 ' "66석이 걸려 있는 비례대표 투표의 45% 이상을 득표했다"고 주장했다'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하마스 대변인이 주장한 이 득표율로는 비례대표 32석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중앙선관위가 27일(한국시간) 발표한 95% 개표 결과에 따르면 하마스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7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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