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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놀거리볼거리] 개판이라고 ? 얼마나 재미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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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개띠 해에 태어난 유명 인물, 58년 개띠가 겪은 현대사 등의 이야깃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병술년(丙戌年) 개띠 해는 설을 쇠어야 제대로 시작한다. 개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와 함께 설 연휴를 보내시는 것은 어떠신지.

혹 개가 무섭고 싫은 분들을 위해서는 별미(別味)로 맛볼 수 있는 아시아 영화를 권해 드린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만큼 개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말.고양이와 더불어 가장 많은 편수를 자랑한다. 올드팬이라면 가난한 옛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산 넘고 물을 건너던 콜리종 개가 주인공인 '돌아온 래시'를 기억할 것이다. 래시를 안고 있던 깜찍한 소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인기 아역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다. 안타깝게도 '돌아온 래시'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벤지와 하치가 있어 그리 섭섭지 않다.

조 캠프 감독의 '벤지'(1974년)는 떠돌이 복슬강아지 벤지가 자신을 돌봐준 오누이가 악당에게 납치되자 목숨을 걸고 이들을 구하는 이야기다. 찰리 리치가 부른 주제곡 '아이 필 러브(I Feel Love)'의 대대적인 히트와 함께 '벤지'는 속편 제작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벤지

하치 이야기

캐츠 앤 독스

102 마리 달마시안

고야마 세이지로 감독의 '하치 이야기'(87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충견 영화다. 1923년 11월, 아키다현에서 태어난 흰둥이 강아지는 이듬해 1월 도쿄 제국대학 우에노(나카타이 다쓰야)교수 댁으로 보내졌다. 우에노 교수는 강아지 다리가 여덟 팔자 모양을 닮았다 해서 하치(八)란 이름을 지어주고, 늦둥이 자식이라도 되는 양 함께 목욕하고 산책 다니며 사랑했다. 하치는 기차로 출퇴근하는 우에노 교수를 배웅하고 마중하며 17개월을 행복하게 보냈지만 1925년 우에노 교수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치는 이후에도 10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부야 역으로 우에노 교수를 마중나갔다. 이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이 동상을 세워주었다. 1935년 3월 8일 하치도 세상을 떠나 우에노 박사 곁에 묻혔다. DVD에는 일본의 대표적 명견인 아키다 순종견을 기르는 아키다견 농장 방문기가 들어있다.

최근 들어 영화 속의 개들은 미담보다는 모험과 각종 수난도 마다않는 액션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101마리 달마시안'(96년)은 동물 가죽에 미친 모피코트 회사 여사장에게 납치된 점박이 개들의 탈출극이다. 속편인 '102마리 달마시안'(2000년)과 애니메이션 버전도 나와 있다. '캣츠 앤 독스'(2001년)는 첨단기술을 배경으로 한 시끄럽고 난폭한 동물 액션극이다. 사악한 고양이떼가 개에 대한 인간의 알레르기 반응 제거 혈청을 연구하는 교수를 납치하고, 이에 맞서는 개들의 활약이 그려진다.

그래도 개들은 남녀의 사랑을 매개하는 사랑스러운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96년)의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개, '우연한 방문객'(88년)에서 주인의 이혼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개, '비밀과 거짓말의 차이'(2005년, 원제 Must Love Dogs)에서 동생과 친구에게 빌려 데이트에 데리고 나간 개들은,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다.

정말 재미있는 '개판' 영화를 빠뜨릴 수 없다. 125회 메이플라워 독 쇼에 출전한 5마리 개와 그들의 괴팍한 주인, 개 조련사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코미디 '베스트 쇼'가 그것이다. 세계 각국 개 3000마리의 각종 묘기를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게스트가 2000년 연출.시나리오.주연의 1인3역을 맡았고, 미국 코미디 영화제에서 '가장 웃긴 영화상'을 받았다.

개를 가까이 하기 싫은 분들께는 아시아 영화를 통해 이색 명절 분위기를 맛보기 권한다.

연간 제작편수로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영화 제작국 인도 영화에는 미남미녀의 집단 군무가 있어 더욱 즐겁다. K S 라비쿠마르 감독의 '춤추는 무뚜'(95년)가 인도 서민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면, 인도계 영국 감독 거린더 차다의 '신부와 편견'(2004년)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원작으로 삼아 세련된 서구 취향을 자랑한다.

최근 아시아 영화 강국으로 부상 중인 태국의 영화로는 프라차야 핀카엡 감독의 '옹박'(2003년)이 무난한 액션물이다. 공중에 솟구쳤다 몸을 내리꽂다시피 하는 태국 전통무술 무에타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DVD에는 무에타이에 대한 소개와 주연배우 토니 자 인터뷰, 메이킹필름 등이 들어 있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2003년)는 우울하다가 사랑스럽다가 짠하게 끝나는 영화다.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일본 청년과 일본 여행을 꿈꾸는 태국 여성의 며칠 간의 만남을 그린다. 라타나루앙 감독은 강혜정 주연의 신작으로 올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기도 했다.

중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지앙 샤오 감독의 '영화소년 샤오핑'(2004년)에선 가난했던 시절, 천막 극장에서 보았던 옛 영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아시아 지도를 그릴 때 빼놓기 섭섭한 나라 터키 영화로는 타소스 볼메티스 감독의 '터치 오브 스파이스'(2003년)가 최근 비디오로만 출시됐다. 그리스와 터키 관계에선 실향민의 처지가, 향신료와 음식 이야기에선 설날 상차림이 연상되고, 덤으로 첫사랑의 달콤하고 씁쓸한 여운까지 남긴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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