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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또 국회의원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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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 헌법을 만들고자 하는 논의는 지난 1월 초부터 가동 중인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의석 비례에 따른 36명의 국회의원들과 교수, 변호사, 시민운동가 위주의 53명의 자문위원, 여기에 형식적인 공청회 등을 통한 국민 의견수렴만으로 헌법개정안을 마련해 단순히 찬반안을 표시할 수 있는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온당한 헌법개정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 개개인과 국가간의 최고 계약인 헌법개정을 국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나갈 때, "대한민국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 1조 정신에도 부합할 것이다. 바로 시민의회가 헌법개정안 마련의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작년 10월부터 1년 과정으로 시민의회를 운용하고 있다. 법률에 기반을 두고 출범한 시민의회는 연령, 성, 사회계층, 지역을 고려해 추첨으로 뽑은 99명의 시민과 정부에서 의장으로 임명한 연방대법원 판사 1명, 총 1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낙태금지를 비롯한 국민투표 시기 및 방식, 인구 고령화 대책, 의회 선거일 고정 문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등 헌법조항 검토 등 국가 주요 과제를 다루고 있다. 시민의회는 전체회의 때마다 전문가 설명과 질의 응답, 찬반 토론, 원탁협의라는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주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전체회의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웹사이트를 통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접수한다. 각 주제마다 참석자 과반수 의결로 권고안을 채택해 의회에 전달하며 의회가 수용하고 헌법개정이 필요할 경우 국민투표에 부쳐서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헌법 개정은 아니지만 캐나다 두 개주에서는 2004년과 2006년 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한 선거개혁시민회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지역, 성,연령을 고려해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회의는 거의 1년 동안 운용되었다. 첫 석 달 동안은 전 세계적으로 실행 중인 선거제도 학습,다음 넉 달 동안은 지역을 다니면서 공청회를 통한 주민의견 수렴과정, 최종 단계에서는 숙의를 통한 주민투표에 회부할 선거제도 권고안을 결정하였다.

우리도 국회 차원에서 법률로 시민의회를 지역, 성, 연령을 고려해 300명을 추첨을 통해 구성하여 1년 동안 운용하여 마련한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심의하여 발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발의되면 2018년 6월 지방 선거 때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시민위원 300명만의 참여가 아니라 시민위원 한 명당 30명의 시민자문위원을 결합시키고 전체회의를 인터넷을 통한 생중계를 통해 시민들이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마련할 때 국민이 원하는 헌법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