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 기소 위기, 운 따르는 ‘프랑스 오바마’

프랑스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 부부에 대한 검찰 기소가 임박하면서다. 프랑스 저널 뒤 디망셰는 13일(현지시간) 검찰이 피용 부부를 이번주 사기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용의 아내인 페넬로프가 남편의 의회 보좌관으로 기용돼 일도 안하면서 거액의 세비를 받아갔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 매체는 두 사람이 곧바로 형사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전했다.

피용

피용은 “정치적 수사”라며 반발하면서 기소되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프랑스 대선구도에 변화가 일 전망이다. 피용이 흔들리자 반사이익은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가져갔다.

마크롱, 프랑스 대선 돌풍
좌파표 흡수하며 반사이익

극우 르펜과 맞대결 할 경우
여론조사 65대 35 압승 예측

지난 9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1차투표 지지도는 극우 국민전선(FN) 후보인 마린 르펜이 24%, 중도신당 ‘앙 마르슈’(전진)의 마크롱이 21%, 피용이 20%로 나왔다. 두 명이 진출하는 결선에서 마크롱과 르펜이 맞붙으면 각각 65%와 35%로, 마크롱의 압승이 예측됐다.

르펜

마크롱은 2년 전만 해도 프랑스 정가에서 대선후보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북부 아미엥에서 의료전문가인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마크롱은 10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 때 불어와 연극을 가르치던 교사 브리짓 트로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마크롱이 15세였고 브리짓은 40세로 자녀 세명을 둔 유부녀였다. 맏이가 마크롱과 동갑이었다. 브리짓을 보려고 연극반에 가입한 마크롱의 심정을 알게된 부모가 파리로 보내버렸는데, 마크롱은 “반드시 돌아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전화 구애가 계속되자 브리짓이 파리에서 교사 자리를 구했고,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던 마크롱과 2007년 결혼했다. 25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러브스토리에 프랑스 국민들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결혼 이듬해 로스챠일드의 투자은행가로 변신한 마크롱은 큰 돈을 벌었다. 2014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경제장관으로 임명했지만 2년 후 중도 노선을 걷겠다며 탈당해 대선에 뛰어들었다.

“마크롱은 정치적 UFO” 우려도

마크롱

마크롱에 대해 선데이모닝헤럴드는 “헐리우드 대통령에 더 어울린다”고 보도했다. 젊고 출중한 외모 때문이다. 지난 4일 리옹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한 마크롱은 깜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잘 정돈된 헤어스타일, 흰 와이셔츠에 얇은 검정 타이를 맨 파란색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 1만6000명의 지지자를 열광시켰다. 마크롱은 유세 연설에서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중도에서 온 포퓰리스트”라는 말도 듣는다. 런던 퀸메리대 레인보우 머레이 교수는 “중도층 유권자들이 좌·우파에게서 느껴온 거리감을 마크롱이 메워줘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립 마를리에 런던대 교수는 “마크롱은 정치적 UFO(미확인비행물체)”라고 말했다. 마크롱이 중간 지대에서 좌우를 모두 비판하며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마를리에 교수는 “마크롱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 가 있는 운 좋은 후보”라며 “그가 당선되면 프랑스 정치권의 관습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을 2008년 미국 대선의 오바마 대통령에 빗대 ‘프랑스의 오바마’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마크롱에 대한 검증은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많다. 그가 노동시간, 최저임금, 부유세 등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입장과 공약을 발표하면 좌파와 우파 양쪽 지지자들이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지층이 중산층 이상과 고학력에 편중돼 있어 블루칼라 등의 지지에서 다른 후보에 밀린다는 분석도 있다. 투자은행가로서 큰 돈을 번 과정이 석연찮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피용은 이미 “마크롱? 그가 (돈 문제에서) 나보다 훨씬 심할 것”이라며 “그의 고객이 누구였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있지 않느냐”고 공격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