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헝클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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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국 정부는 25일 북한 위조지폐 문제를 놓고 치고받았다. 미 측은 자신들이 북한에 취한 금융제재와 같은 조치를 한국 정부가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우리 정부는 더 이상 새 조치를 취할 게 없다고 맞받았다. 그런 뒤 "보도자료가 정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양국은 지난해 5월 주한미군 전시 비축물자 폐기와 관련된 협상을 할 때도 삐걱거렸다. 당시 주한미군은 미 국방부 폴 울포위츠 부장관이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냈던 서한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협상 중단과 관련된 미측의 불만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문제는 이런 한.미 갈등이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 깊어지면서 증폭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지난달 초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지칭했다. 이어 제이 레코프위츠 북한인권대사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대회에서 "미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의 입장을 번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때맞춰 로버트 조셉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차관은 "북한 정권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하고 위폐를 만들고 국민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이 즉각 대립각을 세웠다. 버시바우 대사를 "예절도 없고 사리도 모르는 불한당" "적대의식으로 이성마저 잃어버린 폭군"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버시바우 대사 발언에 대해 외교부는 미 정부에 "적절치 않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위폐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한쪽이 주장한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북한이 전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인 만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실관계가 확립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양대 홍용표(정의과) 교수는 "한.미 간 충돌은 대북 정책기조가 다르기 때문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한.미 간 충돌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합의 이후에도 북한 태도에 진전이 없자 압박 작전에 나섰지만 한국은 여전히 대북 포용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한.미가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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