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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스튜어드십 코드’가 박스피 뚫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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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경제부 기자

“최순실 덕분이기도, 최순실 탓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제정·공표 및 가입과 관련한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의 분석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지난해 12월 기업지배구조원 및 삼성·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이 참여하는 제정위원회가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2002년 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등이 자금을 대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애초엔 금융위원회가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는 기업들의 거센 반발에 기업지배구조원과 민간 금융회사에 제정 작업을 맡기고 물러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나서 코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적극 설파했다.

물 건너가는가 싶었던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해 말 도입된 것은 ‘최순실 사태’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경유착의 맨 얼굴이 드러나면서, 이번 기회에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바꿔보자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코드 도입 저지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전경련은 해체 위기에까지 몰렸다.

제정·공표는 됐는데 막상 기관투자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을 망설인다. 국내 주식에 100조원을 투자하는 국민연금이 앞장서지 않아서다. 문형표 공단 이사장이 최순실 사태로 구속됐다. 복지부 장관 시절 국민연금을 압박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왔다는 혐의다.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코드 도입과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먼저 나섰다가 기업에 찍힐 수 있다”며 “다들 국민연금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외국인 보유 주식 규모가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개인과 기관은 국내 주식을 내다 파는데 외국인만 사들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를 겨우 넘고,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한 한국 경제에 뭘 기대하는 것일까. 한 펀드매니저는 “외국인 순매수 이유 중 하나가 최순실”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고,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그간 할인 거래되던 한국 기업이 재평가를 받아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배구조 개선으로 8년간 이어진 박스피(박스권+코스피)가 뚫릴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최순실 사태가 촉발한 지배구조 개선으로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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