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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에게 ‘반 롯데’ 부추기는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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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산업부 기자

장주영
산업부 기자

‘?天, 不要提供 ?德用地!(롯데, 사드 부지 제공 말라!)’

얼마 전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는 이런 문구의 피켓을 든 시위대가 나타났다. 자칭 사드배치철회범국민평화행동 소속 회원들이다. 매일 10명 내외가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중국어 문구의 피켓까지 들었다. 실제로 이곳을 지나던 관광객은 발길을 멈추고 피켓을 유심히 바라봤다. 지난 8일 롯데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왕모(41·여)는 “사드가 뭔지 자세히 모르지만 대강은 알고 있다. 그런데 롯데가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가”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배치될 땅(경북 성주골프장)이 롯데의 소유이고, 이를 국방부에 팔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란 설명을 해 주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은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이지 롯데에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중국인으로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지만 관광 와서 이런 시위를 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롯데 측은 피켓시위에 곤혹스러워한다. 주최 측에서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벌이는 시위라서 마땅히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시위를 보고 롯데가 사드 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지난 8일 사드 배치 반대 단체 회원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장주영 기자]

지난 8일 사드 배치 반대 단체 회원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장주영 기자]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놓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정책적 차원에서 부지 선정을 하는데 최적의 땅을 소유한 기업이 끝까지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이다. 롯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정부와 롯데가 수평적인 관계로 협의할 수 있겠느냐. 사드 부지를 롯데가 먼저 나서 제공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의견 개진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견 개진 방법이 꼭 거칠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을 비판하는 이유도 그 특유의 ‘거침’ 때문이다. 외교적인 방법보다는 민간 기업에 대한 보복이라는 거친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다.

실제로 지난해 말 사드 이슈가 불거지자 중국 정부는 롯데의 중국법인 사업장 곳곳에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와 소방 점검에 나섰다. 3조원이 들어가는 선양(瀋陽) 프로젝트 공사에 대해선 중단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피켓시위는 비폭력적 의견 개진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꼭 중국인이 많이 찾는 곳에서 눈에 띄는 중국어로 특정 기업이 사드 배치에 우호적이거나 협력적이라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야 할까. 이런 방법은 거칠고 효과도 크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중국인의 오해를 사거나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음을 헤아렸으면 한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