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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 두달 중간결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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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울산에서 터지기 시작, 본격화된 노사분규가 두달을 끌고 있다.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노사 양쪽이 다 좀더 현명했으면 훨씬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코스트를 줄일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노사분규의 악영향을 따져보는 자(척)에는 그간 두달의 기간을 지내며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산업연구원(KIET)의 분석처럼 단순히 임금의 일시적 대폭상승이 성장·물가·국제수지·실업등에 얼마나 큰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의 수지타산을 열심히 맞춰보는 단계였다.
그러나 최근 전경련 재계 중진들의 모임에서 논의된 얘기들을 듣거나 공개로 진행된 이례적인 국무회의 보고내용을 보면 이제는 단순한 개별기업·국민경제의 수지타산보다 기업인들이 기업활동 자체에 큰 회의와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음을 알수 있다.
기업측의 현실인식이 얼마만큼 올바른가 하는 것은 보는 이에따라 판단을 달리할수 있겠지만, 그간 어떠한 이유가 있었든간에 근로자들이 과격시위등으로 스스로「자충수」를 두어 분위기를 그르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 그같은 분위기가 노사분규타결률 90%같은「희망적」통계를 덮어버린 것 또한 사실이다.
노사분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기업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것이 근로자측이 과격하기 때문이건, 사용자측의 사고전환이 아직 늦기 때문이건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수 없다.『퇴직금을 받으면 제가 일하던 기업의 도움으로 하청중소기업을 차려볼까 하던 생각이었는데 요즘의 노사분규를 보고는 그만 증권 쪽에 모두 쓸어넣고 말았읍니다.』
최근 모대기업의 중역자리에서 물러난 P씨의 이야기다.
극단적인 이야기겠지만 근로자와 상대하는 제조업이 이같은 예비산업 자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서비스업이나 증권·부동산등이 활개칠때 나타날 결과는 임금의 일시적 대폭 상승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축적된 대규모 산업자본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하는 제조업 그만두고 임금이 싼 나라에 가서 공장을 지어 사업이라도 하고싶은생각이다.』
어느 대기업 그룹 총수의 이같은 한탄은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노사분규를 보는 기업인들의 위기감이 아예 임금협상 자체의 여지를 없앨수도 있다는 극단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요즈음의 기업마인드다.
기업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전자메이커의 중역은 최근 다음과 같은 걱정을 했다.『전에는 조립라인에서 불량품이 나오면 작업반장이 꾸짖는 식의 생산관리가 가능했으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큰 걱정이다.』
설혹 노사분규가 타결되더라도 이제 과거와 같은 통제나 지시는 통하지 않는다는 데에서조차 기업인들은 앞으로의 기업경영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그간 두달 남짓한 노사분규의 비계량적인 악영향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 가운데 노사분규의 계량적인 악영향도 점차 KDI등이 작성해 보았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는 쪽으로 접근해왔다.
8월의 무역수지 흑자가 1억달러 밑으로 뚝 떨어져버린것이 움직일수 없는 사실이고, KDI는 제조업 평균임금 15∼16% 상승(전년 대비)의 상황을 최악으로 가상했었으나 최근 상공부가 표본조사한 임금상승률은 그보다 높은 18.5%였다.
KIET가 내놓은 걱정스런 시나리오도 임금 상승률 17.5%를 가정했던 것이었는데 이정도의 임금인상만으로도 최고 21만명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수출은 연간 12억7천만달러가 줄어들며 물가는 최고 6.54%만큼 더 오를 요인이 생긴다는 계산이었다.
노사분규 두달이 낳은 이같은 결과치를 놓고 정부부터가 드러내지는 못할망정 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사분규 동향 일일보고를 받는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요즘 타결되었느냐 안되었느냐보다 타결된 임금 인상률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 훨씬 더 큰관심사가 되였다.
현실로 나타난 18.5%와 같은 임금인상폭을 갖고는 우리기업들의 체질상 아직까지 수출가격을 올려받을 여지가 별로 없으므로 치명적인 경쟁력상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왜 꼭 단숨에 18.5%씩 임금이 올라야만 하는지, 대규모 적자기업에서도 다른 흑자기업과 같은 폭으로 임금을 따라 올려야만 하는지 답답합니다. 임금이 일시적·일률적으로 올라야 한다는 생각은 그로인해 비롯될 경제의 충격과 실업등은 처음부터 외면한 생각이 아닙니까.』
실제 실업문제는 당장 내년부터라도 우리 모두에게 닥칠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임금이 10% 더 오를 경우 20만6천명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KIET의 분석이고 성장률이 7% 수준을 밑돌 경우 매년 쏟아져 나오는 37만명의 신규인력들도 일자리 얻기는 힘들어진다.
임금인상 15∼16%를 가정한 KDI의 시나리오는 현재 60만명수준인 실업자수가 내년이면 97만5천명에 이른다는 계산을 하고있다. 1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수는 실로 엄청난 문제를 몰고올것이다.
또 기업들은 손쉽게 저임일용근로자들부터 해고하여 대처하기 시작할 것이니만큼 상용근로자들의 임금 대폭인상이 또 다른 저임금 계층에 대해 지금보다 더큰 경제·사회적 문제를 안겨주는 결과가 된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위와같은 문제를 심각히 인식하기 시작,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산업구조 조정과 그에 따른 취업구조 조정을 위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하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해고되는 근로자들의 전직훈련제도등이 이제 절실한 필요성을 갖게 됐고 중공·파키스탄·인도등으로부터 추격받는 저임·노동집약적 산업으로부터의 졸업이 또 한차례의 대규모 부실기업정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인식인 것이다.
이 또한 단 두달간의 노사분규가 가져온 결과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임산업의 퇴장이나 취업구조 조정만 해도 잘만 치르면 얼마든지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는 전기로 삼을수도 있다.
두달간 치러낸「수업료」가 너무 비싼 것이지만 모두 처음으로 겪는 일이니만큼 이제는 비싼 수업료의 댓가를 찾아야 할때다. 근로자들은 과격하고 무리한 요구가 과연 현명하고 현실성 있는 것인지, 또 기업측은 기업 마인드를 자포자기 하기전에 이번 노사분규를 새로운 차원으로의 재도약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을수 없는지 곰곰 생각해야할 때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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