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대학 밤엔 미용학원” 공부에 빠진 35세 이주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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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단(35)씨가 7일 부산 부경보건고 졸업식에서 ‘행복드림상’을 받고 있다. [사진 부경보건고]

이단(35)씨가 7일 부산 부경보건고 졸업식에서 ‘행복드림상’을 받고 있다. [사진 부경보건고]

“이주여성이라고 한국에서 고된 일만 하다 보니 기술을 배워야겠다 싶어 고등학교에 갔죠. 막상 배워보니 욕심이 생겨서 대학도 다니려고 합니다. 저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끝까지 파헤쳐보고 싶네요.”

중국인 이단씨의 끊임 없는 도전
공장 일하며 기술 배우려 야간고로
관광 공부하고싶어 대학까지 진학

이주여성인 중국인 이단(35·여)씨는 7일 부산 부경보건고교를 졸업했다. 이어 3월에는 동의과학대 관광중국어과에 입학한다. 이날 부경보건고를 졸업한 157명의 만학도 가운데 대학교에 진학하는 이주여성은 이단 씨를 포함해 2명뿐이다.

2004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이주한 이씨는 식품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포장지 싸는 일을 해왔다. 고된 일이었다. 그러고도 손에 쥐는 건 월 130만원에 불과했다. 2012년 둘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남편은 원양어선을 타야했다. 80세가 넘은 시부모님 병원비에다 아들 둘(각 5세, 9세)을 키우는 데 생활비가 만만찮았다.

고된 나날이 이어지자 이씨는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2015년 3월 미용과 헤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부경보건고에 입학했다.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오후 6시 등교해 3시간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두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나면 자정이 돼서야 잠들 수 있었다.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6개월 넘게 외톨이로 지내면서 학업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들었다. 그러다 미용과 헤어 기술 뿐 아니라 뒤늦게 배운 컴퓨터와 한국어·영어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12년 동안 쓰지 않아 녹슬기 시작한 중국어 실력에도 탄력이 붙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두 아들을 돌봐주는 시어머니도 이씨를 대견스러워 했다.

이씨는 “큰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과제와 통신문을 봐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학업을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동의과학대는 주간대학이어서 진학하면 낮에 일을 할 수 없다. 당장 월 130만원을 벌 수 없지만 2년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면 중국어 교사나 여행가이드로 활동할 수 있다는 판단에 관광중국어과를 선택했다. 이씨는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국비로 운영되는 미용학원에서 미용 기술을 더 배울 생각이다. “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배워보렵니다. 그러다 보면 길이 또 보이겠죠.”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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