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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새 25점차 뒤집었다, 톰 브래디 ‘패스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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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뉴잉글랜드 쿼터백 톰 브래디(오른쪽)가 우승을 차지한 뒤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브래디는 25점차 열세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네번째 MVP에 선정된 그는 또 우상 조 몬태나(3회)를 넘어 역대 수퍼보울에서 MVP를 가장 많이 차지한 선수가 됐다. [휴스턴 로이터=뉴스1]

뉴잉글랜드 쿼터백 톰 브래디(오른쪽)가 우승을 차지한 뒤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브래디는 25점차 열세를 뒤집는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네번째 MVP에 선정된 그는 또 우상 조 몬태나(3회)를 넘어 역대 수퍼보울에서 MVP를 가장 많이 차지한 선수가 됐다. [휴스턴 로이터=뉴스1]

0.4%. 6일 미국 휴스턴 NRG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풋볼(NFL) 결승전 수퍼보울 3쿼터 막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승리 확률(ESPN 분석)이었다. 애틀랜타 팰컨스의 28-3 리드. 1000분의 4의 확률이라면 애틀랜타의 승리가 사실상 결정된 셈이다. 이 때만 해도 대역전극을 연출해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뉴잉글랜드 쿼터백 톰 브래디(40)조차 25점차를 뒤집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경기 후 브래디는 "믿을 수 없다(incredible)”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퍼보울 역사 바꾼 뉴잉글랜드
3쿼터 중반까지 애틀랜타에 3-28
4쿼터에만 19점, 연장전서 대역전

브래디, 466패싱야드 신기록 세워
쿼터백으로 사상 첫 MVP 4회 수상
소속팀은 최다 5번째 우승 트로피

제51회 수퍼보울은 브래디 말처럼 ‘믿을 수 없는’ 반전 드라마였다. 뉴잉글랜드는 경기 초반부터 애틀랜타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공격 활로를 찾지 못했다. 브래디의 플레이도 실망의 연속이었다. 터치타운 패스 하나를 성공했지만 애틀랜타 디펜스태클 그래디 재럿에게만 세 차례 색(sack·태클)을 당했다. 브래디가 체면을 구기는 사이 애틀랜타는 2쿼터에 21점을 내며 승승장구했고, 3쿼터가 끝났을 때는 25점차까지 앞섰다.

노장 브래디는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롱패스 대신 짧고 정확한 패스로 차근차근 기회를 만들었다. 0.4%였던 승리 확률이 조금씩 높아졌다. 4쿼터 9분 4초 브래디의 6야드 패스를 받은 와이드리시버 대니 아멘돌라가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4쿼터 종료 57초 전 러닝백 제임스 화이트가 1야드 러싱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뉴잉글랜드는 브래디의 지휘 아래 4쿼터에만 터치다운 2개 등으로 19점을 뽑아 28-28,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는 연장(한국시간 낮 12시쯤)으로 넘어갔다. 수퍼보울 사상 첫 연장전. 브래디는 안정적인 패스로 차근차근 엔드존을 향해 전진했다. 마침내 동점 터치다운의 주인공 화이트가 2야드 러싱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뉴잉글랜드가 애틀랜타에 34-28로 승리했다. 역대 수퍼보울 사상 최다 점수차 승부를 뒤집은 뉴잉글랜드는 그렇게 다섯 번째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브래디의 아내이자 유명 모델인 지젤 번천(오른쪽)과 딸 비비안 레이크 브래디. [휴스턴 로이터=뉴스1]

브래디의 아내이자 유명 모델인 지젤 번천(오른쪽)과 딸 비비안 레이크 브래디. [휴스턴 로이터=뉴스1]

우승축포가 터졌다. 브래디에게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우승과 MVP를 모두 차지한 브래디는 딸(비비안 레이크)을 들쳐안은 채 아내(지젤 번천)에게 키스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꼭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던 브래디는 어머니 게일린이 보는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브래디의 어머니는 18개월째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이날 머리를 두건으로 감싸고 경기장을 찾았다. 그녀가 이번 시즌 아들의 경기를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브래디는 터치다운 패스 2개 등 패스 시도 62번 중 43개를 정확하게 연결했고, 466패싱야드를 기록했다. 브래디는 ‘캐치볼 중독자’라 불릴 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그는 다섯 번째(2002·04·05·15·17년) 수퍼보울 정상에 서면서 조 몬태나·테리 브레디쇼(이상 4회) 등 전설들을 뛰어 넘었다. 수퍼보울 MVP 네 차례(2002·03·15·17년)도 몬태나(3회)를 뛰어넘은 기록이다.

브래디는 2000년 NFL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전체 199위로 뉴잉글랜드에 뽑혔다. 당시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듬해 주전 쿼터백 드류 블레드소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고, 빌 벨리칙(65) 감독의 연마로 ‘보석’이 됐다. 그는 17년째 뛰고 있는 뉴잉글랜드에서 은퇴하기 위해 구단의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을 맞춰 연봉을 자진삭감했다. 브래디는 NFL 연봉순위 27위(1376만 달러·약 160억원)다.

벨리칙 감독은 스파이 게이트(상대 작전지시를 훔쳐봤다는 스캔들), 브래디는 디플레이트 게이트(바람 뺀 공을 사용했다는 스캔들)에 연루되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난에도 휩싸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2000년대 들어 수퍼보울 최다우승을 합작해내며 '뉴잉글랜드 왕조' 시대를 열었다.

애틀랜타 ‘파브의 저주’ 앞에 또 눈물

1966년(65년 창단) 리그 참가 이후 50년 만에 첫 우승을 노렸던 애틀랜타는 다잡았던 승리를 놓쳤다. 미리 든 축배 탓이다. 경기 초반 강력했던 수비벽이 느슨해지면서 뉴잉글랜드의 반격에 당했다. 이날 패배로 ‘파브의 저주’를 푸는데도 실패했다. 애틀랜타는 1991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33번)에서 뽑은 쿼터백 브렛 파브(48·은퇴)를 이듬해 그린베이 패커스로 트레이드했다. 파브는 19시즌을 뛰며 그린베이의 수퍼보울 우승(1997년)을 이끌었지만, 애틀랜타는 수퍼보울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애틀랜타 연고 프로구단이 우승하지 못해 생긴 '올림픽의 저주'를 풀 절호의 기회도 놓쳤다. 전날 정규시즌 MVP로 선정됐던 애틀랜타 쿼터백 맷 라이언은 '아이스(ice)'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승부처에서 냉정하지 못했다. 라이언의 우승 실패로 2000년 이후 정규시즌 MVP가 수퍼보울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도 이어졌다.

김원 기자, 봉화식 미주중앙일보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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