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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자동차산업 노사관계 바꿔야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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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고용과 일자리는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내수와 수출 시장에서 수요가 있어야 존재한다. 이에 따라 세계자동차 메이커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다양한 신차들을, 부담이 낮은 가격에 남보다 먼저 내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국제 경쟁력에는 수 만개 부품들이 대규모 조립 생산을 거쳐 생산되는 자동차의 특성상 노사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일에 밀리고 개도국에 쫓겨
한국 자동차 수출시장 침체기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 키우려면
관성적 파업 등 불안요인 없애야

즉 임금 비용이 회사의 경쟁력에 비추어 적정한지, 그리고 수요 변화에 민첩하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근로 유연성이 보장되어 있는지가 자동차 산업을 지킬 수 있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생존 차원에서 노사관계가 협조적인 지역이나 국가로 생산거점과 함께 일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노사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대립적, 국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처럼 공격적 파업은 쉽게 허용되면서 경영 측의 대항수단인 대체근로 투입은 불법화되어 있고, 임시직 고용, 탄력적 근로시간, 파견 및 도급 등의 생산 유연성을 제공하는 제도도 엄격히 제한되는 나라도 없다. 노사간 균형적인 대화와 타협보다는 외국 경쟁사에는 유례없는 생산 파행적인 파업과 과도한 임금인상이 반복되고 있어 ‘메이드 인 코리아’자동차가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2012년 한국 자동차 생산대수는 456만2000대에서 2016년 422만9000대로 33만3000대 감소했다. 반면 노사관계를 개선했거나 전통적으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국들은 생산과 고용이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86만6000대, 독일은 26만2000대, 인도 28만8000대, 멕시코 59만6000대, 스페인 91만대로 생산량이 증가했다.

중국은 내수시장의 폭발적 증가까지 힘입어 무려 884만7000대가 늘었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나름 증가세에 있음에도 생산량 감소를 보이고 있어 지난해 세계 제5위 생산국 지위마저 인도에 내주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외형적인 고용수준은 유지되고 있으나 사법부의 판결로 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된데 기인한 것으로 이런 외부 강제조치는 미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켜 결국은 일자리를 없애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올해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망이 밝지 않다. 2% 내외의 미미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지만 아직 소형차 위주의 국산차는 중국·인도·멕시코 등 개도국 추격에 바짝 쫓기고 있다. 미 트럼프 정부의 자국 산업 위주 통상정책으로 최대 수출시장에서 매우 조심스런 입장에 있다. 유럽연합(EU)과는 이미 자동차 교역에서 역전당했고 러시아, 중남미, 중동 등 주요 수출시장은 아직도 침체 국면에 있으며, 아세안 시장은 선점한 일본기업들이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어 접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생산, 일자리, 제조업 부활을 산업정책 키워드로 내세우고 자국의 자존심인 자동차 분야에서 성과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노사관계도 남부 지역은 노조가 아예 없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산업 근거지인 북미 지역도 임금과 고용의 대타협 차원에서 협조적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연말 GM이 재고 조정을 위해 시간제근로자 해고, 공장가동 중단, 근로시간조정 등 비용절감 조치를 바로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사례다.

이제 한국도 기간제조업인 자동차산업의 부활을 위해 필수 전제조건인 노사관계를 개조해 생산량과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또다시 관성적으로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나 파업이 일어난다면 치명적일 것이다. 완성차 노조원들은 웃을지라도 협력업체 근로자들과 일자리를 갈구하는 청년들은 쓰라릴 것이며, 완성차 노조원들마저도 언젠가는 지난 외환위기 때처럼 구조조정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0년 된 구형 노사패러다임으로는 새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글로벌경쟁력 강화라는 공동 목표 아래 노사간 교섭력 균형에 따른 임금-고용 패키지 협상, 3~4년 단위의 임금협약, 성과형 임금체제, 유연한 고용과 근로형태 등 선진 경쟁국수준의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모두 열린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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