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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최순실 사태]'탄핵 결정 지연만이 살 길'…시간싸움에 올인한 박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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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난달 31일 퇴임하면서 재판관 수는 8명이 됐다. 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는 다음달 13일까지다. [중앙포토]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난달 31일 퇴임하면서 재판관 수는 8명이 됐다. 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는 다음달 13일까지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24일 JTBC가 대통령 연설문이 유출된 최순실(61ㆍ구속)씨의 태블릿PC를 입수해 단독보도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으킨 지 100일(1월 31일 기준)이 지났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전망은 어떤지를 5가지 사안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오는 9일이면 두 달째를 맞는다. 탄핵소추 청구인(국회 소추위원단)과 피청구인(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시간 싸움'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의결서를 받은 헌재는 지난 1일까지 10차례에 걸쳐 변론을 진행했다. 이달에는 7일과 10일, 14일에 변론기일이 잡혀 있다. 13명의 증인 출석이 예고돼있다.

탄핵심판의 운명을 가를 열쇠는 '시간'이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퇴임으로 재판관은 8명으로 줄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은 3월 13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 재판관마저 퇴임하면 7명이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탄핵이 인용되는 데 필요한 최소 정족수는 재판관 6명이다.

박 대통령의 지연 전술, '재판관 9명보다 8명, 그보다 7명이 낫다'


재판관이 줄어들수록 박 대통령 측은 유리해진다. 법리적으로 박 대통령 측이 탄핵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 측이 탄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기각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9명보다 8명이 낫고, 8명보다 7명이 낫다. 박 대통령 측이 지연작전을 쓰는 이유다.

헌재의 결정 시기를 3월 13일 이후가 되도록 구도를 만드는 게 박 대통령 측이 그 동안 보여준 전략이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 측이 펼친 지연전술은 무더기 증인 신청과 증인으로 채택된 청와대 관계자들의 출석 거부였다.

박 대통령 측은 지난 1일 헌재에 추가 증인을 신청했다.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을 비롯해 기존에 신청했다가 기각된 8명과 새로 신청한 5명 등 13명이다. 그 중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포함됐다.

박 대통령 측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 여부를 명확히 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탄핵소추 사유에서 빠진 형사법 위반 사실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증인 채택 여부는 오는 7일 열리는 11차 변론기일에서 확정된다. 이미 이들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가 증거로 채택된 상황이 채택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더기 증인신청' 마지막 카드는 박 대통령 직접 출석


박 대통령 측의 두 번째 지연 전술은 그 동안 미뤄온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인 출석이다. 이재만ㆍ안봉근 전 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소재가 불분명해 증인 채택을 하지 못했는데 이들이 갑자기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이 크다.

안 전 비서관은 오는 14일에 출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박 대통령 대리인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비서관은 지난달 5일 증인신문이 예정돼있었지만 잠적해 탄핵 심리에 차질을 빚게 한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오는 9일 이전에 박 대통령 측이 이들에 대한 증인 신청을 하게 되면 이미 정해진 변론 기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전술은 박 대통령의 직접 출석이다.

공개변론이 모두 종료되면 재판관들은 본격적으로 탄핵 여부를 결정할 평의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공개변론 종료 이후 직접 출석하겠다고 하면 헌재가 이를 거부할 방도가 없다. 탄핵 심판의 당사자의 출석을 거부하고 심리를 진행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노려 박 대통령이 직접 출석 카드를 꺼낸다면 그 시기는 이달 넷째 주, 20일 이후에서 3월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선고일은 13일 이후로 늦어질 수 있다. 재판관회의와 평결, 결정문 작성에 대략 2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속도전 강조한 헌재, "신속 종결에 협조 부탁"


황교안 권한대행이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후임 재판관을 새로 지명하는 방안도 있지만 정치적 부담이 커서 실행 가능성은 작다. 또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전원 사퇴해 심리를 지연시키는 방법도 거론된다. 박 대통령으로선 탄핵을 피하기 위해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탄핵소추위원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특검의 기소를 받지 않기 위해 특검이 종료된 뒤에 탄핵에 대한 결정이 나는 것이 좋다. 특히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한 뒤 7인 체제에서 헌재 운영 자체가 지체될 수 있는 점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의 시간끌기가 뜻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헌재의 탄핵 심판은 절차적 공정성과 엄격성을 전제로 하고 신속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왔다. 박 대통령 측의 노골적인 시간끌기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전 헌재소장이 퇴임하면서 남긴 당부는 헌재의 이 같은 엄중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쪽 사건 관계자에게 당부 말씀 드립니다. 이 사건이 절차적 공정성과 엄격성을 지키면서 가능한 한 신속한 종결을 위하여 절차 진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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