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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갗처럼…로봇 피부도 만지는 걸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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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스웨덴 드라마 ‘리얼 휴먼’에 등장하는 로봇은 외견상 인간과 전혀 차이가 없다. 로봇 외피가 금속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인간의 피부와 거의 같아서다. 이런 로봇 피부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촉각 센서를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KAIST, 실리콘·탄소 섞은 센서 개발
미세한 접촉에도 민감하게 반응
망치로 쳐도 견디고 복원도 쉬워

김정·박인규 KAIST 기계공학과 공동연구팀은 2일 “실리콘과 탄소 소재를 활용해 로봇의 피부 역할을 할 수 있는 촉각 센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망치로 내려치는 정도의 강한 충격을 받아도 전기 신호를 정상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사진 KAIST]

망치로 내려치는 정도의 강한 충격을 받아도 전기 신호를 정상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사진 KAIST]

피부는 인체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외부 환경을 인식해 신경계에 전달하는 감각기관 역할도 한다. 외부 자극에 노출되면 압력·표면온도·거칠기 등 물리량도 측정하는 것이다.

로봇 피부도 궁극적인 역할은 인간의 피부와 같다. 드라마처럼 로봇 피부를 인간의 피부와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1970년대 시작됐다. 74년 의수(義手)에 사용하는 압력 센서가 처음 개발됐다. 미국 휼렛패커드(HP)가 터치스크린에 응용했던 기술이다. 85년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로봇 팔에 적외선 센서를 달아 ‘로봇을 위한 피부’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90년대 들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가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 피부는 또 한 번 진일보한다. 얇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센서를 붙이고 다시 유연한 폴리아미드를 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피부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축성과 충격 흡수성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AIST 공동연구팀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피부처럼 외부 감각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실리콘과 탄소나노튜브(CNT)를 혼합해 만든 복합재가 그것이다.

박인규 교수는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 실리콘을 평판 형태로 만드는 기술은 보편화됐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이번 연구처럼 실리콘 복합재를 볼록하거나 반구 형태로 제작하면 로봇을 감싸는 다양한 형태의 피부를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엔 실제로 피부가 감각을 인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기임피던스영상법(EIT)이라는 의료 영상 장비와 연결했다. 손으로 눌렀을 때 복합재가 받고 있는 전류 차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미세한 압력의 강도 차나 범위까지 복합재가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부가 촉각을 대신하는 모습을 실제로 확인한 것이다.

상용화까지 최소 5년 더 기다려야

‘피부’ 역할에 필요한 충격 흡수성도 좋았다.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 피부는 망치로 내려치는 정도의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고, 센서 일부가 파손됐을 때도 손쉽게 복원할 수 있었다. 센서 일부가 파손돼도 파손 부위에 복합재를 채운 뒤 경화하면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등장했던 다양한 촉각 센서의 문제 중 하나가 전기 배선이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워낙 많이 필요해 이를 정리하는 게 골칫덩이였다. 하지만 KAIST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방식은 복잡한 전기 배선이 필요 없다. 넓은 영역에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힘을 전기 배선 없이도 구분할 수 있다.

이 로봇 피부는 앞으로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로봇 외피로 응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실용화하기까지 보완할 점도 많다. 현재 로봇 피부는 폴리머가 마모되거나 고무가 말라버려 6개월 정도 지나면 새로운 피부로 교체해야 한다.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형상의 피부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injection molding)도 더 개발돼야 한다. 또 납으로 땜질한 전극과 폴리머가 만나는 부분을 접합하는 기술도 개발돼야 한다.

김정 교수는 “로봇 피부로 상용화하기 위해선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1월 2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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