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입시학원 찾기 힘든 시골학교, 올해도 서울대 5명 보낸 비결 “대학수준 실험 수업 덕분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올해 서울대에 입학하는 영주 대영고 신승교·오찬영·이영현·구본재·김상희 학생(왼쪽부터)이 교내 실험실에 비치된 실험도구 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대영고 학생들은 화학실험을 비롯해 다양한 심화교육 과정 수업을 듣는다. 올해 대영고는 경북 일반계 고등학교 중 가장 높은 서울대 진학률을 보였다. [영주=프리랜서 공정식]

올해 서울대에 입학하는 영주 대영고 신승교·오찬영·이영현·구본재·김상희 학생(왼쪽부터)이 교내 실험실에 비치된 실험도구 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대영고 학생들은 화학실험을 비롯해 다양한 심화교육 과정 수업을 듣는다. 올해 대영고는 경북 일반계 고등학교 중 가장 높은 서울대 진학률을 보였다. [영주=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영주 대영고에 다니는 이영현(19)군은 지난해 ‘과제연구’라는 수업을 들었다. 다른 학교에선 흔히 볼 수 없다. 스스로 주제를 정해 실험하고 분석 결과를 낸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이군은 ‘파리지옥은 어떤 조건에서 잘 자랄까’를 주제로 잡았다. 파리지옥은 날벌레를 유인해 잡아먹는 식충(食蟲)식물이다. 이군은 인터넷장터에서 파리지옥 화분 3개를 구입해 한 학기 동안 빛·온도·수분을 달리하며 각각의 생장 과정을 관찰했다. 이군은 “과제연구 수업을 통해 파리지옥을 직접 보고 실험까지 할 수 있어 수업이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상위권대 합격 쏟아진 영주 대영고
고급물리 등 직접 해보고 답 찾아
다른 학교와 공동 토론도 큰 힘

이군 옆 반의 동급생 구본재(19)군은 영주여고·영광여고 학생들과 함께 ‘고급물리’를 수강했다. 대영고가 운영하는 ‘공동교육 과정’ 중 하나다. 다른 학교 학생과 합쳐 5명 이상이 수강을 신청하면 공동교육 과정 수업이 만들어진다. 현재는 국제경제·응용수학·영미문학 등 대학 수준의 26개 수업이 개설돼 있다. 구군은 “교과서에선 물체 이동 속도를 구할 때 마찰 저항을 고려하지 않지만 이 수업에선 공기 마찰을 포함해 계산했다”며 “선생님의 도움 없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토론해 계산법을 찾아낸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수능에 안 나와 일반고선 대부분 채택 안 해

전교생이 겨우 335명(3학년 110명)인 소백산 아래 작은 고등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대영고는 2012년부터 매년 3~5명씩 서울대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해 오고 있다.

올해도 서울대 합격자 5명이 나왔다. 이영현(식물생산과학부)·구본재(기계항공공학부)군과 신승교(경제학부)·오찬영(의예과)·김상희(치의학과)군이 주인공이다. 서울대뿐 아니라 고려대(2명)·성균관대(1명)·육해공군사관학교(3명)·경북대(15명) 등 주요 대학 합격자를 대거 쏟아냈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 수로 치면 경북 119개 일반계 고교 중 대영고와 경주고가 공동 1위다. 경주고 전교생 수(758명)를 감안하면 대영고가 사실상 1위다. 1987년 인문계로 전환한 이후 대영고는 지금까지 누적 157명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주변에 제대로 된 입시학원 하나 찾아보기 힘든 시골 학교에서 서울 강남학군 부럽지 않은 성적을 내는 비결은 뭘까.

대영고는 2010년 교육부에 의해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되면서 실험연구 중심 수업이 도입됐고 2015년부터는 기본교육 과정에 더해 ‘심화형 과정’을 운영한다. 심화형 과정에는 고급수학Ⅰ·Ⅱ, 인류의 미래사회, 과제연구, 과학교양, 과학융합 등 6개 과목이 있다. 이들 수업은 교육부가 정한 정식 과목이지만 다른 일반고에선 대부분 선택하지 않는다. 수능 출제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김상희군은 “처음에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 수업을 왜 들어야 하는지 불만도 조금 있었지만 심화형 과정을 들을수록 기본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 참여하는 창의적 학습 효과

이지흠 교장은 “심화 과정을 소화하기 위해 대영고는 다른 고교보다 한 학기에 200시간 이상 수업을 더 한다. 고교 한 학기 최소 수업량이 180단위(3060시간)인데 대영고는 192단위(3264시간)를 한다”고 설명했다.

대개 예체능이나 취미활동으로 채워지는 ‘창의적 체험활동’도 수업과 연계한다. 예컨대 국어 교과에선 인문학 기행, 과학 교과에선 사제 동행 천문캠프를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진행한다. 인근 학교 학생들과 함께 듣는 공동교육 과정도 2~3학년 대부분이 신청한다. 물론 모두 교육부 지침 범위에서 이뤄진다. 전교생의 60%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도 장점이다.

강현석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참여하는 교육을 통해 학력을 높였다는 점이 모범 사례”며 “소수정예반을 꾸려 명문대 진학률만 높이는 방식보다 대영고 모델이 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영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