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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지시로 좌편향 단체 3000곳-인사 8000명 DB 구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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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종덕 공소장서 본 블랙리스트…특검 “박 대통령·김기춘·조윤선과 공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가운데)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이 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오른쪽)을 직권남용·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김 전 실장, 조 전 수석 등과 공모관계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뉴시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가운데)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이 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오른쪽)을 직권남용·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김 전 실장, 조 전 수석 등과 공모관계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뉴시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혐의로 김종덕(60·구속)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79·구속)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51·구속)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공모관계로 판단한 사실이 31일 확인됐다.

“좌편향 예술 문제, 롯데·CJ 비협조”
박 대통령 2013년 발언으로 시작
김 “전투모드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조윤선, 다이빙벨 전 좌석 매입 지시

특검팀이 지난달 30일 기소한 김 전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에 대한 공소장의 소결 부분에는 ‘김 전 장관 등 3명은 김기춘·조윤선·김상률(전 교문수석)·김소영(전 문화체육비서관)·박 대통령·최순실 및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해 대통령 및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의 직권을 남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순차 공모는 ‘전체적인 모의 과정이 없었더라도 여러 사람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공모관계가 성립할 때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되는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판례). 특검팀은 이들의 직권남용에 두려움을 느낀 예술위·영화진흥위·출판진흥원 등의 임직원들이 심의위원 선정 및 문예기금 지원 심의 업무 등에 개입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박준우 전 정무수석, 좌편향 인사 DB 만들어

특검팀은 2013년 9월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발언을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으로 파악했다. 특검팀 조사 결과 당시 박 대통령은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같은 달 3일 국립극단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를 공연했고, 5일에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했다.

이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관련 분야 수석들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총괄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12월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에서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장악했다. ‘변호인’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 예다. 하나하나 잡아가자”고 지적했다. 이날은 CJ가 투자한 영화 ‘변호인’의 개봉일이었다.

이틀 뒤 김 전 실장은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반정부·반국가적 성향의 단체들이 좌파의 온상이 돼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단체들에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유진룡(61) 전 문체부 장관에게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고 말했고 “세월호 유족편을 든 예술계·학계 인사들도 배제하라”고 했다는 게 특검팀의 수사 결과다. 모철민(59) 당시 교육문화수석에게도 문체부 실·국장을 통해 이를 실현하라고 요구했다.

김 전 실장은 이듬해인 2014년 1월 4일 열린 실수비에서는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있다”며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의 형국이다. 전투 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 등의 지시를 받은 박준우 전 정무수석과 신동철 전 정무수석실 비서관이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해 좌편향으로 판단한 3000여 개 단체와 8000여 명의 인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정무수석 등은 중간 진행 상황을 김 전 실장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고, 2014년 5월에는 김 전 실장이 검토한 ‘문제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이와 함께 2014년 7월 블랙리스트에 대해 소극적이던 유 전 장관 면직 뒤 최규학 기조실장 등 3명의 1급 공무원들의 사표를 받는 과정에도 박 대통령이 개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2014년 10월 신동철·정관주 비서관 등에게 ‘부산영화제 다이빙벨 전 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해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 후 폄하하는 관람평을 게시토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송승환·문현경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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