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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점 포함 경주박물관 유물 21만점…지진 나도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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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종각 내진 보강공사가 이뤄지기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종각 내진 보강공사가 이뤄지기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도 지진을 피할 수 없었다. 1975년 건립된 후 겪은 가장 큰 진동이었다. 김종우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는 순간 국보 걱정부터 생기더군요.” 경주박물관에는 경주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관(국보 제87호),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제 관모(국보 제189호), 가야시대 기마인물형토기(국보 제91호) 등 국보급 문화재 15점이 소장돼 있다. 그는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경주 지진 두 달 전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 지진이 발생한 터라 지진 대비를 이미 해뒀던 것이다”고 말했다. 다행히 박물관은 지진으로 건물 유리창 4장이 부서지고 외벽 타일이 일부 떨어진 게 피해의 전부였다. 하지만 경주박물관은 9·12 지진을 직접 겪으면서 더 단단하게 지진을 대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경주박물관 지진대책 살펴보니
9·12 지진때 문화재 피해 없었지만
박물관 내진시설 확충하기로 결정
일본·미국서 방문객 대피방법 등
관련 시설, 시스템까지 벤치마킹
전국 박물관과 노하우 공유 계획

경주박물관은 15점의 국보, 38점의 보물을 비롯해 21만7170점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돌로 만들어진 소장품, 높게 솟은 탑 등은 한 번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크게 파손될 수 있다.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와 시설담당 직원들은 일본과 미국을 찾았다. 지진이 잦은 지역의 박물관·미술관이 어떻게 지진에 대처하는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선 교토국립박물관·오사카역사박물관·나라박물관·후쿠오카현립미술관·큐슈국립박물관을 둘러봤다. 미국에선 LA게티뮤지엄·오렌지카운티뮤지엄·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을 찾았다. 강한 진동에도 소장품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과 진동을 차단하거나 줄여주는 면진(免振) 설계법도 살펴봤다. 지진이 발생하면 방문객을 어떻게 대피시키는지도 배웠다. 당시 미국 박물관·미술관을 둘러본 한 학예연구사는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재난에 대비한 장치들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며 “현지에서 배운 것들을 경주박물관에 하루빨리 적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경주박물관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보강 작업부터 시작했다. 박물관 입구 종각에 걸린 성덕대왕신종은 무게가 18.9t에 달해 큰 지진이 나면 자칫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지난달 3일까지 4개 기둥을 보강하고 기둥 테두리에 들보를 설치했다. 이로써 종각은 ‘특’ 등급 수준의 내진 성능을 갖췄다.

나머지 건물 보강공사도 차례로 진행 중이다. 경주박물관에는 1975년 지어진 신라역사관과 특별전시관을 비롯해 서별관(1978년), 월지관(1983년), 신라미술관(2002년) 등 5개 건물이 있다. 신라미술관을 제외하고 내진 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채 건립됐다. 지난 2011년 내진성능평가에서 모든 건물이 내진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경주박물관은 올해 정부예산 20억원을 확보해 건물을 모두 내진 1등급 이상으로 보강할 방침이다. 유병하 관장은 “경주 지진을 계기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진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노하우를 확보했다”며 “이를 전국의 공공·사립 박물관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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