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 2035

이 불편함마저 사랑한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노진호
노진호 기자 중앙일보 대중문화
노진호 문화부 기자

노진호
문화부 기자

해외여행 중 만난 이에게 이름을 밝힌 게 화근이었다. 친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스토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말이 ‘구애’지, 폭력이었다. 안 넘어갈 게 뻔한데 10번이고 100번이고 찍어대면 그건 상습폭행이니까. 결국 친구는 SNS 계정을 삭제해야 했다. 소식을 접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친구에게 “네가 다 예뻐서 그러는 거야, 그러려니 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서러웠다고 한다. 친구는 스토킹만큼이나 그 ‘위로의 말’이 참 화가 나고 서러웠더란다.

언뜻 “예뻐서 그런 것”이란 위로가 왜 잘못인지 모르겠다면 요새 화두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필요한 사람일지 모른다. 곰곰이 생각했는데도 모르겠다면, 오늘도 혀를 무기 삼아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고 있을 확률이 높다. 위로랍시고 건네진 그 말에 친구는 원치 않는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됐고, 스토킹이란 범죄의 원인 제공자가 돼버렸다. 선한 의도는 말의 폭력성 앞에 궁색해질 뿐이다.

이런 일은 주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미혼 친구는 명절에 이성 친구에 대해 ‘추궁’당했다. “결혼이 걱정된다”며 건넨 말은 꼬리를 물고 친구를 괴롭혔다. 대부분 비슷할 거다. 어떤 어른은 친해지려 아이의 석차부터 물었을 테고 누구는 격려한다고 어린 학생의 엉덩이를 툭툭 쳐줬을 거다. 교양 없는 일부 필부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가 한 대학을 지칭하며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이라 하고, 다른 이는 청춘을 응원한답시고 “일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가라”고 한다. 이쯤 되면 우리에겐 정치적 올바름조차 사치스럽고, ‘상식적 올바름(commonsense correctness)’이란 신조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프로-불편러’가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적당히 웃어넘기던 일들에 대해 SNS로 ‘이거 나만 불편하냐’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들이다. 여기서 우리의 역할이 있다. 이들에게 너그러워지기다. 이들의 ‘딴지’가 항상 정답은 아닐지라도, 너무나 사소해서 ‘적당히 넘어가고 말지’ 하며 불편을 느낄 때에도 우리는 이들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적당히 넘어간 탓에 우리가 상식이 부족한 현재를 살아내고 있으니까. 『자유론』의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빌리자면 틀린 가설조차도 진리를 더욱 빛나게 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친구는 결국 “예뻐서 그런 것”이란 위로 말을 참지 못하고 SNS를 통해 비판했다. 그 글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위로하려고 한 말인데 이 친구한테는 편하게 말을 못하겠구나’ 하는 불편함이 또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지르밟고, 친구를 힘껏 응원하기로 한다. 그렇게 모두가 이 불편함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꽤 근사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노진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