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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北 공식투자만 1조4천억원

중앙일보

입력

현대의 대북투자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 투자한 항목 외에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5억달러 비밀송금에서 드러나듯 투명성이 결여된 엄청난 자금부담이 속병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투자=1998년 6월 한우 1차분 5백마리 지원 이후 5년간 현대의 대북사업은 방만한 사안이 곳곳에 드러난다. 경제논리를 무시한 무리한 투자와 선심성 지원사업에 달러가 투입된 것이다.

한우 지원도 모두 1천5백여마리를 보내면서 운반용 새 트럭 1백대를 북한에 넘겨줬다. 또 고급형 다이너스티를 포함해 70여대의 승용차도 줬다. 곧이어 북측 요청으로 컬러TV 5만대도 배편으로 실어보냈다.

모두 1천65만2천달러(약 1백72억원)가 들었지만 현대는 비판여론에 "연불(延拂.외상)수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금을 갚지 않자 현대는 "결제할 대금을 대북 투자분으로 전환했다"고 해명했다.

1만2천3백명 수용 규모에 4천7백여만달러가 들어간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 건설공사도 경협과 동떨어진 지원성 사업이다. '정주영'이란 간판을 거는 데 5백60억원이 들었지만 99년 9월 착공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공사를 중단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현대아산을 골병 들게 한 것은 9억4천2백만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금강산 관광과 독점개발 대가다. 사업수익과 관계 없이 98년 11월분부터 6년3개월간 매달 일정액으로 나눠 무조건 입금하는 이른바 '럼섬(lump-sum)' 방식의 계약을 체결한 것.

그러나 연간 50만명으로 예상한 금강산 관광객은 98년 11월 첫 출항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모두 합쳐 52만9천1백여명에 그치는 등 계산이 어긋났다. 결국 관광객 1인당 1백달러(육로관광은 50달러)의 대가만 받기로 임시계약을 했지만, 당초 약속한 금액은 언젠가는 내야 할 돈으로 북한 장부에 잡혀 있다.

◆회생책 없나=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정부와 민간에서 중구난방식 대북사업 지원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6일 "조율 안된 경협방안으로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대북 협상력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이런 불협화음과 함께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를 문제삼는 시각도 있다.

금강산 관광선의 출범 때는 '햇볕정책의 옥동자'로 치켜세우며 성과로 내세우던 정부가 현대아산이 빈사상태에 빠지자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나 몰라라 한다는 얘기다. 남북협력기금의 지원책도 줬다 말았다 하는 식이다.

현대의 회생 방안과 관련, 鄭회장의 사망을 계기로 불거진 온정론적 차원의 현대아산 돕기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단계에서는 비합리적 접근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남북 상생(相生)의 경협으로 차원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기보다는 파산지경에 이른 현대아산을 철저히 진단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당장 정부나 공기업이 금강산관광 사업에 직접 개입할 경우 남북경협의 발전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영종.정용수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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