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독방서 일기처럼 그린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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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드로잉 작품들로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 벨기에 출신의 미술가 데이브 슈바이처. [사진 스페이스비엠]

드로잉 작품들로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 벨기에 출신의 미술가 데이브 슈바이처. [사진 스페이스비엠]

벨기에 출신 화가 데이브 슈바이처(45)는 좀 남다른 이력을 지녔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렇고, 미술가로서 활동한 지 10년 남짓된 2012년에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은 것도 그렇다. 무분별한 약물과 알콜 중독에 빠져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자각한 결과였다. 이후 주로 병원 독방에서 2년쯤을 보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자신이 느낀 수치심, 절망, 고통, 희망 등등을 마치 일기를 쓰듯 커다란 화폭 대신 작은 종이에 펜과 아크릴 물감 등으로 쏟아냈다.

서울서 드로잉전 여는 슈바이처
“술과 마약에 빠진 나를 구한 작품들”

이렇게 그린 수 백 점 가운데 가려뽑은 50여점을 서울 동빙고동 스페이스비엠에서 전시중이다. ‘정신병원에서 드로잉(Drawings from the Loony Bin)’이라는 제목대로 작가의 이력과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개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작가는 이들 그림에 대해 “내게는 힐링, 셀프힐링”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 4년 동안 술도, 마약도 일절 멀리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양성애자인 그는 2000년대 초반 ‘포지티브’라는 도발적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자의 피와 감염자 아닌 작가 자신의 피로 그린 그림을 뒤섞어 전시하며 HIV 감염자에 대한 편견,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아름다움은 편견을 깼을 때 보인다’는 역설을 강조한 작업이다. 편견을 깨는 것은 화려한 색채의 강렬한 미감, 거기에 고통과 열망이 혼재된 이번 전시작도 예외가 아니다. 2월 19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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