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청년 ‘실신시대’ 해법은 일자리 만들기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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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경제부 기자

장원석
경제부 기자

“밝은 아이였다. 사춘기 때도, 재수를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버무려진 얼굴이다. 자꾸 아비의 눈을 피한다. 내가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침묵이다.”

투정으로 몰아 가면 골만 깊어져
정규직 비정규직 간 격차 줄이고
생산적 해결책 찾는 리더십 절실

한 50대 회사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아들은 2년째 취업에 실패했다. 혹 딴마음이라도 품을까 두렵다고 했다. 청년 ‘실신(실업+신용불량) 시대’. 청년이 진단한 자신들의 시대다. 민주화나 경제성장 같은 폼 나는 용어를 붙이기엔 이미 지쳤다. 그나마 가진 게 젊음이고, 패기고, 열정이었는데 이마저도 위태롭다. 청년문제. ‘이대로 두면 큰 일 난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10년 이상 됐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청년의 목소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배움에 큰 돈이 든다.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등록금이 두 번째로 비싼 나라다. 그래도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차별이 뻔하다. 대출을 받아 어렵게 졸업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 비집고 들어간 인턴 자리에선 열정페이에 시달린다.

꾸역꾸역 취업했다. 월급은 도통 오를 생각을 안 한다. 결혼이 늦어진다. 여력이 없으니 아이는 하나면 족하다. ‘내 집 마련’은 상상 밖에 있다. 전세 난민으로 떠돌다 결국 용기를 낸다. 그래서 또 빚을 진다.”

길에서 넘어진 사람을 봤으면 일으켜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기성세대의 차가운 시선은 실신한 청년의 마음에 또 한 번 비수를 꽂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오래된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대선 후보가 있는가 하면, 학자금대출을 관장하는 재단 이사장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 때는 더했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논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청년은 ‘왜 이런 세상을 물려줬느냐’고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내일은 더 나을 것’이란 희망만이라도 보여달라는 작은 외침이다. 이걸 ‘배고픔 모르는 것들의 투정’으로 몰아붙이면 세대 간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다.

고통의 출발점은 결국 일자리다. 20대가 제때, 제값받고 일할 수 있는 직장만 있다면 대부분 풀릴 문제다. 그러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처우·임금 격차를 어떻게든 손 봐야 한다. 생산적 논의와 특정 세대, 특정 계층의 양보가 절실하다. 이걸 이끌어낼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올해는 대선의 해다. 다시 청년이 화두로 떠올랐다. 너도 나도 내가 챙기겠단다. 한쪽에선 청년수당과 부채 탕감을 외치고, 다른 쪽에선 포퓰리즘이라고 쏘아붙인다. 진지한 고민보다 선언적 구호가 앞서있다. 이 나라, 진짜 ‘어른’이 안 보인다.

장원석 경제부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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