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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감사인 당국이 지정, 분식회계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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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대기업집단 소속이거나 금융업종인 상장사는 주기적으로 금융당국이 정한 회계법인으로 외부감사인을 교체해야 한다. 6년간은 자유롭게 회계법인을 선정할 수 있지만 이후 3년 동안은 증권선물위(증선위)가 지정해 주는 회계법인을 외부 감사인으로 써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사실상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50%로 늘어난다.

회계 투명성,신뢰 제고 대책 발표
6년 간 자유롭게 회계법인 선정 후
3년 동안은 당국서 선정하게 바꿔
대기업과 금융회사에 적용키로

금융위원회는 22일 이러한 내용의 ‘회계 투명성 및 신뢰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민경제에 영향이 크고 분식회계에 취약한 회사에 ‘선택지정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선택지정제란 상장사가 현재의 감사인을 제외한 회계법인 중 희망하는 3곳을 적어내면 증선위가 그 중 한 곳을 지정해주는 방식이다. 기존의 자유수임제가 갑을(甲乙) 관계를 형성해서 회계법인이 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을 반영해서 마련한 개선책이다. 선택지정제 대상에는 국민경제에 영향이 큰 대규모 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소속 회사와 금융회사가 포함된다. 또 분식회계에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회사(소유·경영의 미분리, 잦은 최대주주 변경 등)와 수주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건설사·조선사 등이 대상이다.

선택지정제는 법 개정 후 2년간 유예를 둔 뒤 시행된다. ‘자유선임 6년+선택지정 3년’이 원칙이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선택지정된 회계법인은 보수 덤핑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계약 연장에 신경 쓸 필요도 없기 때문에 독립적인 회계감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증선위가 직접 1개의 회계법인을 지정해주는 ‘직권지정제’ 대상도 늘린다. 기존에 횡령·배임 전력 임원이 있거나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상장사가 대상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직·간접으로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회사가 전체 상장사의 50%(직권지정제 10%, 선택지정제 40%)에 달한다.

애초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은 모든 상장사에 직권지정제를 전면 도입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금융위는 잘하고 있거나 문제가 없는 기업까지도 감사인이 강제 교체되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마련한 절충안이 선택지정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회계투명성을 높인다는 면에서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한국회계학회장인 손성규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분식이 발 붙이지 못하게끔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다”며 “기업에도 적지 않은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장회사들은 부작용을 우려한다. 익명을 원한 한 상장회사 회계 담당자는 “잦은 감사인 변경으로 인해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감사가 진행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 등 회계투명성을 위해 노력한 기업이더라도 대규모 기업진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지정제를 적용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감사수임료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상장사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선택지정제 도입시 회계법인 간 과열 경쟁이 사라지면서 수임료가 50% 이상 올라갈 수 있다. 종합대책엔 상장사 감리주기를 대폭 줄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회계감리란 재무제표 및 감사보고서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상장사에 대해 현재 25년인 금융감독원의 감리 주기를 10년까지 줄인다. 직권 또는 선택지정 감사 대상이 아닌 회사(지난해 말 기준 1958개)는 6년 이내 주기로 감리를 한다.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한 제재는 대폭 강화된다. 기존에 20억이었던 분식회계 기업과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한도는 상한선을 폐지키로 했다. 분식회계가 감사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경우 감사인 개인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한다. 기존에 5~7년 이하 수준인 분식회계에 대한 형벌 규정도 징역 10년 이하로 늘리고 분식 규모가 크면 유기징역 5년 이상 등 가중처벌키로 했다. 김태현 국장은 “회계부정으로 적발되면 강하게 처벌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서 분식회계 시도 자체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다음달 중 공청회를 거쳐 최종 방안을 확정한 뒤 2분기 중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애란·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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