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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그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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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문가가 제 분야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해서 쓴 책,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도 어깨너머로 함께 읽을 만한 문장으로 쓴 책.” 리처드 도킨스가 자서전에서 밝힌 저술에 대한 신념이다.

이 생각대로 도킨스의 책은 과학 대중화의 상징과도 같은 위치에 섰다. 『이기적 유전자』(1976)는 한국에서만 50만권 이상 팔렸다. 『만들어진 신』(2006)은 한국에서 18만권, 전세계에서 300만권 이상 판매됐고 30개 언어로 번역됐다. 2011년 낸 『더 매직 오브 리얼리티』와 2015년 자서전까지 저서 13권은 총 1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식민지 관리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영국인 도킨스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기 때문에 생물학자가 됐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밝힌 바 있다. 어른과 아이들이 모여 사냥하는 사자떼를 구경할 때도 자신은 장난감 자동차 놀이만 했다는 기록을 자서전에 남겼다. 다만 회의주의자가 될 기미는 확실했다. 그는 영국의 기숙학교 예배시간에 무릎꿇기를 거부하고, 대신 종교 체험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통해 했던 10대 시절을 자서전에 기록해놨다.

동물학으로 과학 연구를 시작한 건 59년 옥스퍼드에 입학하면서다. “인생에서 나를 만든 것이 있다면 옥스퍼드”라는 도킨스의 말은 유명하다. 학문적 큰 질문을 가지고 혼자 도서관에 파묻혀 방대한 자료를 찾아보는 식의 공부가 도킨스를 키웠다.

특유의 명쾌한 은유법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73년. 파업 때문에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컴퓨터로 해왔던 연구를 잠시 멈춘 채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책이 『이기적 유전자』. 유전자를 진화의 중심으로 놓고 설명한 이 책은 생물학계에 충격을 던졌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경계를 허물었다.

도킨스는 과학에 의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내가 만일 전자(電子)라면’ 혹은 ‘내가 만일 유전자라면’ 식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사람들이 이해 가능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성공은 도킨스의 이같은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킨스는 실험실에만 파묻히지 않고 사회의 문화·종교·과학의 교차점으로 눈을 돌린 과학자로 꼽힌다. 스스로 늘 “내 책이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기를 바란다”고 했고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제3의 문화’를 여는 데 한몫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두고 “현대 과학계에서 자신이 기여한 바를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리처드 도킨스다. 과학과 사랑에 빠진 멋진 인간”이라 했고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살아 있는 작가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 칭했다. 논쟁을 부르는 사상과 글쓰기 스타일로 “프로 복서”(과학 잡지 네이처)라는 별명도 얻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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