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사진을 위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 날의 사진들은 대개 조그맣다. 엽서 반절 크기에도 채 못 미치는 그 조그마한 흑백 사진들은 이미 인화지의 빛깔이 누렇게 바랬거나 귀퉁이가 달아나기도 하였고, 또 어떤 것은 모습이 너무나 희미하게 찍혀마치 부연 안개 저쪽에 서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몇장 안되는 이 남루한 사진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말로 하기 어려운 감회와 그리움으로 그 시절을 선연하게 떠올리곤 한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사진은 단 2장 뿐인데 그중 하나는 세 살때의 것이다. 사진속의 계집아이는 이체 막 다박하게 자란 앞머리를 비뚜룸히 단발한채 남색 갑사 조끼에 앙증맞은 앵두 단추를 달아 연노랑색 저고리 위에 받쳐입고 있었다. 흑백의 단순한 사진인데도 나는 그 옷 색깔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얼굴조차 짐작하기 어려웠을 그 무렵의 모습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어쩌면 그 사진을 함께 보며 들려주신 어머니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는지.
사진관으로 가던 날 아침의 정경이며 그 무렵 우리 집안에 일어났던 친척들의 대소사, 그리고 젊은 아버지가 하시던 일에 대하여 어머니는 몇 번이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 사진이 흔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휴지보다 쓸모없는 것이 되기까지 하였다. 사진 현상소마다 형형색색으로 여름철 피서사진을 산더미처럼 현상해 놓지만 끝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쓰레기로 가려지는 사진 또한 그만큼씩이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하다.
이제 또 아무때나 쉽게 찍을 수 있는 것이기에 도무지 귀한 마음이 들지 않는 사진, 귀하기는 커녕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뒹굴어 발길에 채고 버려져서 오히려 귀찮은 사진, 그러나 그 사진마다 박혀있는 것은 바로 자기의 얼굴이고, 시간이고, 이야기인 것이다.
자기의 얼굴이 귀하지 않은 세상은 남의 얼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무도함 속에서도 참으로 오래 살아남아 간직될 한 장의 사진을 위하여 나는 오늘 어떤 얼굴을 시간위에 찍어야 할 것인가, 과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