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ㆍ충주 방문을 시작으로 ‘국민 속으로’ 현장 투어에 나서면서 그가 방문지에서 남긴 방명록 글도 화제가 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방명록 쓰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명록에 긴 글을 남긴다.
13일 반 전 총장은 첫 공식일정으로 방문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쪽지에 메모해온 것을 보며 여섯 줄의 글을 남겼다. 15일 오후에 찾은 박세일 전 한나라당 의원의 빈소에서는 통상 이름만 쓰는 관례와 달리 편지글을 적기도 했다.
내용은 주로 “지난 10년 간 UN 사무총장으로서 세계 평화와 인권 및 개발을 위해 노력한 후 귀국하였습니다(국립서울현충원)”와 같은 귀국 보고와 장소에 따라 애도(국립서울현충원, 천안함기념관 등)의 글을 썼다.
거의 빠지지 않는 내용은 “대한민국의 더 큰 도약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국립서울현충원)”, “고인의 뜻을 받들어 한국사회의 대화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박세일 전 의원 빈소)”,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진력하겠습니다(김해 봉하마을)”와 같은 앞으로의 다짐이다. 반 전 총장은 ‘미력이나마’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본인의 경험과 능력을 겸손하게 낮추면서도 대선 출마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명록에 쓴 표현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17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참배하기 위해 찾은 봉하마을에선 “따뜻한 가슴과 열정으로 ‘사람사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라는 표현이 논란이 됐다.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따옴표까지 한 것은 슬로건을 넣겠다는 건데, 노 대통령이 구현하던 꿈은 ‘사람사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이라며 “한두 줄 암기가 안 되면 그냥 수첩 보고 쓰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지향점을 생각한다면 '사람사는 사회'나 '사람사는 세상'이나 뭐가 다르냐. 괜한 꼬투리다"는 반론도 나온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내며 10년 간 한국어를 자주 쓰지 않은 까닭에 문법에 어긋난 표현도 더러 등장한다. 17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쓴 '따듯(뜻)한', 19일 대전현충원에서 남긴 “서 있읍(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박유미 기자yumi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