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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판결…징역 1년 선고에 욕하자 바로 징역 3년 때린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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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판사에게 욕을 하자 즉석에서 형량을 세 배로 늘린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판사 “선고 안 끝난 상황에서
반성 안해 판결 정정한 것”
법조계 “법정모욕 기소하면 되는데”

지난해 9월 22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2단독 김양호 부장판사는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52)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판결에 불만을 품은 A씨는 법정에서 “엉터리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던 A씨는 곧바로 법정 경위에 의해 제압됐다.

이에 김 판사는 A씨를 다시 불러 곧바로 A씨에게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그 자리에서 형량을 늘려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징역 3년’이라고 기록했다. 선고 형량이 순식간에 세 배로 늘어난 것이다. 검찰은 당초 A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고 김 판사는 구형량대로 선고했었다.

이처럼 형사사건 재판정에서 재판장이 선고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벌인 피고인에게 곧바로 형량을 늘려 선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선고 절차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다음달 14일 의정부지법(항소심)에서 판가름날 예정이다.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 (판사의) 악감정이 실린 판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억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호인은 또 “A씨는 1심 선고에 대한 충격으로 교도소 안에서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한 법정에서 동일한 피고인을 상대로 두 번 선고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선고에 항의하는 피고인에 대해 ‘발끈한 선고 번복’이란 지적도 나온다.

고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욕설을 하고 소동을 피울 경우 판사가 ‘법정모욕죄’를 적용해 별도로 추가 기소할 수 있다”며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냉정을 유지하며 적법 절차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데 재량권을 벗어나 선고를 번복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법정모욕죄의 경우 재판장 직권 결정에 의해 20일 이내의 감치나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수사 절차에 의해 기소되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법정이라도 상황이 벌어진 그 자리에서 양형에 포함해 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A씨의 경우도 감치재판에 추가 회부하는 것이 상식적 절차였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실례로 지난해 9월 4일 수원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이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4년6월형을 선고하자, 김씨가 법정을 빠져나가면서 욕설과 함께 출입문을 걷어차는 등 난동을 부렸다. 당시 담당 재판부는 김씨를 감치재판에 회부했다.

이에 대해 김양호 부장판사는 의정부지법 김신유 공보판사를 통해 “선고를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구두로 형량을 고칠 수 있다. 당시 선고 도중에 피고인이 욕설을 하고 난동을 부려 구두로 형량을 정정해 선고했다”고 해명했다. 김 공보판사는 “(실형을 낭독할 당시) 선고 절차가 종료됐는지에 대해 항소심이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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