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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게] 설 앞둔 나눔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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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2일 오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2006 아름다운 나눔 보따리' 행사 발대식이 끝난 뒤 자원봉사자들이 불우이웃에 나눠줄 보따리를 안고 행사장을 출발하고 있다. 기업체와 아파트 부녀회 등에서 단체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김상선 기자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 은평구 구파발동. 22일 오전 SK텔레콤 한원철 부장은 중학교 2학년인 딸 송이(15)와 함께 박춘희(65.가명)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박 할머니의 집은 어른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골목길 끝에 붙어 있었다.

보증금 500만원짜리 단칸방에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는 박 할머니는 반가움과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낯선 손님을 맞았다. 외환위기 때 남편과 사별한 뒤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박 할머니로서는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낮인데도 방은 어두침침했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형광등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부장 가족은 쌀.김.치약.세제 등 생필품이 가득 든 보따리 하나를 할머니 앞에 내놓았다.

"자식도, 희망도 없이 사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견디고 살아."

박 할머니는 생면부지인 한 부장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송이양은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고 눈물만 글썽였다. 몇 분 뒤 한 부장 가족이 일어서려 하자 박 할머니는 "조금 더 있다 가라"며 손을 붙잡았다 이내 놓았다. 자신 한 몸 누일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그곳이 손님들에게 불편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부장은 근처의 불우이웃 네 곳을 더 찾은 뒤 '임무'를 끝냈다.

한 부장이 박 할머니 집 등을 찾은 것은 '2006 아름다운 나눔보따리' 행사의 일부였다.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윤팔병.손숙.박성준)는 설을 앞두고 혼자 사는 노인,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서울 705개 등 14개 도시에서 모두 2006개의 보따리를 준비했다.

아름다운 가게 전국 매장의 지난해 12월 판매수익금에 LG생활건강.삼양사 등 8개 기업이 기증한 식료품 등을 합쳐 만들었으며 보따리 한 개당 11만5000원 상당의 물품을 넣었다.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20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배달을 맡았다. SK텔레콤.KT.포스코 임직원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단체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경기도 분당 정자동 아이 파크, 서울 서초동 삼익 아파트, 서울 휘경동 주공 아파트 등은 부녀회 회원들이 나눔을 실천했다.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쌀쌀한 날씨지만 이웃을 도울 수 있어 휴일을 반납한 게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송재성 보건복지부 차관은 "추운 날씨지만, 봉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박재호 이사장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일을 한다기에 선뜻 행사를 지원하게 됐다"면서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가게는 2004년부터 3년째 나눔보따리 행사를 실시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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