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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9. 사랑한다는 것은 전체를 본다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닉 나이트
- 데이비드 라샤펠

얼마 전에 하얀 눈이 내렸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눈이었다. 하지만 눈발을 즐기고 바라볼 틈이 없이 바빴다. 하루 이틀이 지나서야 눈 내렸던 풍경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었다. 도시 곳곳에 골고루 쏟아지는 눈에 왜 감동을 할까. 답을 구하면서 경복궁을 지나 통의동을 보니 길 풍경은 흰 눈에 물들었고, 느린 걸음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하얀 눈발을 보거나 맞으면 사랑받는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전체에 흩날리는 눈발이 사랑이라면, 그러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래전에 읽은 신앙 서적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체를 본다는 것”이란 말을 떠올렸다. 깊이 꿰뚫어 보는 해석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눈 오시는 날에는 특히 시인 백석이 생각나고 백석의 “적 경”을 읊고 싶어진다.


신 사라구를 잘도 먹드니 눈 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 멀은 산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즛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
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눈 오는 아침에 나이 어린 아내가 아들을 낳았고, 늙은 홀아비의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이는 풍경 묘사가 빛난다. 묘사만으로 시는 수작이 된다. 단순하게 묘사하여 깊고 아름다운 시가 된다. 흰 눈 내리는 모습이 모든 더러움을 덮어버리는 순결함 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백의 미가 그려진다. 아기 탄생을 축복하는 듯이 눈이 내린다. 가슴에서 금긋지 말고 사랑하라. 사랑하라, 하며 눈이 내리는 것만 같다. 비도 바람도 구름도 경계선이 없다. 모든 자연은 금을 긋지 않는다. 오직 사람의 마음만이 금을 그으면서 슬픔과 상처를 만드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갈망하는지. 오늘은 그 하얀 눈처럼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사진가들을 살펴보고 싶다.

먼저 대림미술관에서 인기리에 전시 중인 닉 나이트를 살피겠다. 그야말로 하얀 눈처럼 패션과 사진, 회화와 영상을 넘나들며 창작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심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파리에서 어린 날을 보냈다. 4살 때 “너는 의사가 돼야 해”라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그는 대학에서 화학과 생물학을 전공하다 본머스앤폴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맛보게 된다. 그의 전시에서는 눈에 익숙한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레이디 가가와 케이트 모스, 나오미 캠벨 등의 사진들이 친밀감을 준다. 그는 재학 시절 발표한 ‘스킨헤드’로 크게 주목받은 후 세계적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비요크 등 디자이너들과 손잡는다. 다양한 방식을 넘나드는 가운데, 내게는 사회에서 금기시되거나 소외됐던 장애나 차별, 폭력과 죽음과 같은 가치관을 패션과 연결시킨 사진들이 상업성을 뛰어넘는 매혹적인 작가정신으로 빛났다. ‘거침없이 아름답게’라는 타이틀로 닉 나이트 사진전은 3월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초기 작품부터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하는 작품까지 총 180여 점이 소개되는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이 볼만했다. 그의 사진에도 마이클 잭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안젤리나 졸리, 마돈나 등의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두 전시를 오랜만에 하얀 눈이 흩날리던 날에 구경하여 더 강렬하게 남은 듯하다. 모든 경계를 지우는 눈이 더 각별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려는 눈처럼 통섭을 얘기해야겠다. 통섭은 대세다. 통섭은 원시시대부터 있어왔다. 통섭은 인간의 본능이다. 잇고 연결 짓고 벽이란 벽을 부수고, 전체로 보려는 무의식적 욕구의 방식이다. 통섭으로 전체를 보고 부분이 아닌, 전체를 사랑하려는 인간의 본질이 뿌리내려져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 통섭의 방식이 세밀해질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달프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더 외롭고 힘겹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두 전시는 볼만하지만, 비주얼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나 자본력에서 서민 작가들은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들다. 그래서 화려해서 놀랍고 즐겁고, 슬펐다. 그래도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통섭으로 전체를 보는 사진가들의 사랑법은 어떠한지를.


작가소개
시인. 사진가. 미대 디자인과 수학, 국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매니아층이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 2권 『사랑은 시처럼 온다』 등
동시집으로 초등 교과서에 동시가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와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Love That Dog』 등이 있다.

사진가로 사진가로는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관점을 보여준 첫 전시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전 이래 사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성찰'을 펼쳐,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명중에 선정된 바 있다. 4번째 사진전 <사과여행>사진집은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채택되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 <사과, 날다- 사과여행 #2>전을 열고,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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