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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레터] 역사의 데자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6년 4월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정몽구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간략한 입장문을 발표합니다. 당시 중수부장은 박영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였으며, 수사 검사 중 한 명은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이었습니다. 검찰은 발표문을 통해 “총장을 포함해 수사에 관여한 모든 검사들의 고심을 거쳐 사법처리 방침을 결정했다”고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검찰은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 여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습니다. 검찰 수뇌부는 글로벌 대기업의 총수를 구속할 경우 대외신인도 하락과 이에 따른 경영의 어려움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수사팀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윤석열 검사 등이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 사무실로 가 “만약 정 회장을 구속하지 못한다면 사표를 내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입니다.

결국 검찰은 “중수부에서 수사하고 있는 대형 사건에 대한 수사팀 의견이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다”면서 “검찰총장께서 제대로 된 결정을 하실 수 있도록 보좌하는게 중수부의 기능”이라는 해명성 발표까지 곁들였습니다. 마치 검찰총장과 수사팀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쳐진 것은 중수부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 당시 발표문의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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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가까이 지난 오늘 박영수 특검팀이 논란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정의’를 내세웠습니다. 특검팀은 “국가경제 등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기까지 특검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중수부 출신 검사들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수사팀장의 평소 소신을 생각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앞으로 수사 과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이런 역사의 데자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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