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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연기부터 연출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마스터' 조현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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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2016, 조의석 감독)에서 박장군(김우빈)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단 한 사람은 절친한 해커 안경남이다. 다단계 유령 회사 ‘원네트워크’의 돈을 빼돌리려 양봉장에 숨은 해커이자, 싫다는 장군에게 굳이 꿀단지를 안기는 순한 청년이다. 그를 연기한 이는 배우 겸 감독 조현철(30). ‘터널’(2016, 김성훈 감독) 등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상업영화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인이다.

“안경 쓰니까 진짜 매드 클라운 같잖아요.” 스튜디오에서 조현철을 보며 촬영 스태프들이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그와 똑 닮은 친형, 래퍼 매드 클라운 얘기였다. 하지만 형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일부일 뿐이다. ‘마스터’의 경남부터 ‘터널’의 어리바리한 막내 구조 대원, ‘차이나타운’(2015, 한준희 감독)의 지적 장애인 홍주까지. 조현철은 조연으로 출연해 단번에 시선을 앗아가는 조용한 ‘신 스틸러’가 됐다. 훤칠한 키에 말간 얼굴은 미숙해서 더 귀여운 청년(터널)으로, 순수해서 더 위협적인 악(차이나타운)으로 작품마다 다르게 비쳤다.

사진=정경애(STUDIO 706)

사진=정경애(STUDIO 706)

“경남은 제가 ‘무난하게 해낼 수 있다’고 여긴 캐릭터였어요. 다만 제 호흡이 느린 편이라, 속도감 있는 ‘마스터’에 흠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평소 말수가 적은 그는 인터뷰 내내 큰 눈을 굴리며 표현을 골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말들은 ‘시적(詩的)’이었다. 이를테면 조현철은 연기를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우연한 삶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 답했다. 또 “요즘은 사람이 만든 예술 작품보다 산·바다·해 등 자연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조의석 감독은 “수줍음이 많은 배우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좀 힘들었지만, 전작을 보며 카메라 앞에서 에너지가 폭발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이 펼쳐지는 ‘마스터’에서 빙그레 웃게 되는 대목은, 장군과 경남이 함께하는 장면들. “(김)우빈씨가 많이 신경 써 준 덕에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촬영 현장에서 혼자 구석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웃음).”

조현철 연출작 `뎀프시롤:참회록`(2014)

조현철 연출작 `뎀프시롤:참회록`(2014)

내성적인 조현철이 다양한 작품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은, 그가 지닌 연출 재능 덕분일 테다. 조현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다니며 단편 ‘척추측만’(2009) ‘뎀프시롤:참회록’(2014) 등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2학년 때 연출한 ‘척추측만’은 몸이 아픈 소년·소녀를 그린 작품으로, 질병에 관한 묘사와 구성이 탄탄해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였다.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배우 박정민이 이 영화를 본 후 “연출 실력으로는 도저히 (조)현철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연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터널’을 촬영할 때는 배우로서 대단한 성취를 보여 주고 싶기도 했죠.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요즘은 영화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경이롭게 느껴져요.” 이런 생각의 변화를 바탕으로 조현철은 “오는 봄에 장편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멀리서 영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친구의 하루를 그린 영화란다. 20대 내내 치열하게 이상을 좇았던 그에게 지금은 무엇을 꿈꾸는지 물었다. “20대에는 뭐라도 되고 싶어 ‘불’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았어요. 코미디영화 같은 답답한 세상도 싫었고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상도, 이 시대의 영화도, 나도 같은 자리에 정지해 있는 것 같았어요. 이젠 연기로든 영화로든, 살면서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그릴 생각이에요. 그렇게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싶어요.”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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