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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호랑이판 '형제는 용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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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주연:프레디 하이모어.가이 피어스
장르:드라마
등급:전체
홈페이지:(www.2brothers.co.kr)
20자평:귀여운 호랑이 두 마리의 눈물겨운 우애

할리우드의 고전 영화 '왕과 나'(1956년)를 기억하는 영화팬이 많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에 나온 이 영화는 율 브리너 등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와 아름다운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동양에 대한 심각한 편견과 서양 우월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세기 태국은 미개하고 야만적이지만 영국 출신 여교사의 감화를 받아 문명화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투 브라더스'(감독 장 자크 아노)는 20세기 초 식민지 시대의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왕과 나'와 달리 서양 우월주의의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쿠말과 샹가라는 이름의 호랑이 형제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사람이 호랑이를 쫓는 둘 중 하나겠지만 영화는 놀랍게도 호랑이와 사람의 화해를 모색한다. 그럼으로써 서양인의 탐욕을 비판하고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현대 문예사상의 중요한 흐름인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의 관점이 잘 녹아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호랑이들은 서구 문명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정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유물 장사꾼 겸 사냥꾼인 에이든(가이 피어스)이 정글 속 유물 발굴에 나서면서 모든 것이 극적으로 바뀐다. 그는 유물 발굴에 방해가 되는 호랑이들을 처치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새끼 호랑이 형제인 쿠말과 샹가는 부모를 잃는다. 그리고 형 쿠말은 서커스단에 팔리는 신세가 되고, 동생 샹가는 프랑스 총독의 어린 아들 라울(프레디 하이모어)에게 선물로 넘겨진다.

씩씩했던 쿠말은 서커스단의 가혹한 조련에 지쳐가고, 수줍음 많던 샹가는 사람들 손을 거치며 거칠고 사납게 변해 간다. 수년 뒤 어느 날 형제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가혹한 격투장에서 다시 만난다. 처음엔 형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혈투를 벌이지만 이내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탈출한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년 라울이 이들의 뒤를 따라가고, 결국 라울과 호랑이 형제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화해를 이룬다.

이 대목은 중세 기독교의 유명한 성자 프란체스코의 전설을 생각나게 한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던 그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나운 늑대에게 형제라고 부르며 다가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인간과 동물의 화해는 생태주의자들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의 모습이다.

영화에서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도 자주 눈에 띈다. 특히 고대유물을 사고 파는 경매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여기서 인류의 고귀한 문화유산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이자 부자들의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유물 발굴 장면에선 1000년도 넘었음직한 귀중한 불상을 통째로 운반하기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차 없이 목을 잘라내기도 한다.

정글에 관광객을 위한 큰 길을 내려는 프랑스 총독의 집요한 계획이 좌절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비록 일시적이겠지만 서양 문명의 손길로부터 자연을 보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국왕의 옆에는 '왕과 나'의 안나(데보라 커)를 연상시키는 프랑스 여자가 따라다니지만 안나처럼 용감하고 똑똑한 여자가 아닌 겁 많고 약간 바보 같은 여자로 표현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호랑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나니아 연대기'가 순전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사자를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1%의 위험한 장면을 제외하고 진짜 호랑이 배우들을 사용했다. 그래서 호랑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살아 있는 표정이 느껴진다. 제작진은 프랑스.태국.인도 등 세계 각지를 돌며 22마리의 호랑이를 배우로 선발하고 1년간 연기 지도를 한 뒤 8개월간 촬영하는 공을 들였다. 각각의 성격을 감안해 모성본능이 강한 호랑이는 어미 역할, 씩씩한 호랑이들은 어른이 된 형제 역할, 연약한 호랑이는 서커스단의 늙은 호랑이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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