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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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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새 부인, 새 부인 하지 말아요. 남편 여의고 불쌍하게 사는 여자 하나를 구제사업하는 셈치고 집에다 데려다놓았을 뿐이니까. 그 여자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딸애 시집가는 일 때문에 바빴소."

서문경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자 이번에는 금련이 서문경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재빨리 뽑아내어 살펴보았다. 그 바람에 안그래도 작취미성으로 엉클어져 있는 서문경의 머리가 후루룩 아래로 쏟아졌다.

"어, 금칠을 해놓은 비녀네. 내가 준 비녀는 어떻게 하고 이런 비녀를 꽂고 있죠?"

"당신이 준 비녀는 며칠 전에 술을 먹고 말을 타고 오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어디론가 달아나버렸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소. 그래서 아무 비녀나 꽂고 다니는 거요."

"아무 비녀라니요? 여기 비녀에 시가 두 줄 적혀 있는데요.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는 비녀예요. 가만 있자, 뭐라 써 있나? '금 재갈을 물린 말은 푸른 풀밭에서 울고(金勒馬嘶芳草地), 옥루에 있는 사람은 살구꽃 만발한 하늘에 취하네(玉樓人醉杏花天)' 보통 시가 아닌데요. 금 재갈 물린 말은 누구며 옥루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그 비녀는 물론 맹옥루가 서문경에게 혼인 선물로 준 것이었다. 금 재갈 물린 말은 서문경을 가리키고 옥루에 있는 사람은 맹옥루를 가리켰다. 말이 푸른 풀밭에서 울고 있다는 것은 말의 발정 상태를 암시하고 있고, 또한 그것은 여인을 찾아 헤매는 서문경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셈이었다.

금 재갈은 서문경의 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다. 살구꽃 만발한 하늘에 취한다는 것은 사랑과 성적 쾌락에 한없이 젖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글쎄, 나는 비녀에 그런 시구절이 적혀 있는 것도 알지 못했소. 비녀 만드는 사람이 그냥 심심풀이로 적어놓았겠지. 휴우, 목이 막 타는구먼. 물 한잔 주시오."

서문경은 서 있기도 힘든지 두 다리가 허물어지듯 탁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금련은 영아를 시켜 물을 한 잔 가지고 오게 하면서 또 서문경의 부채를 뺏어 들었다. 그 부채는 붉은 살에 금박 무늬를 새겨넣은 사천 부채였다.

"어, 이빨 자국이 부채 손잡이에도 있고 부챗살에도 있네. 이건 여자가 남자와 잠자리를 하면서 부채를 들고 있다가 절정에 이르러 이빨로 부채를 물 때 생기는 자국들인데."

아닌게 아니라 그것은 금련이 정확하게 추론한 셈이었다. 지난 밤 서문경이 어느 기생과 잠자리를 할 때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부채였다. 알몸에 부채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기생의 모습이 그냥 알몸으로 있을 때보다 더욱 선정적이었다. 서문경이 기생의 몸을 더듬고 애무하느라 땀을 흘리자 그 여자가 부채로 서문경의 등을 살살 부쳐주었다. 그러다가 부채 끝으로 서문경의 샅을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긁기도 하였다.

금련이 말한 대로 그 기생이 절정에 이르자 괴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자기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부채를 하룻밤 정사의 증표로 서문경에게 선물해주었다. 남자들 중에는 그런 부채들만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자들도 있었다.

"그건 내가 심심할 때 부채를 물어서 생긴 자국들이오. 나는 손에 쥔 물건들을 입으로 가져가는 버릇이 어릴 적부터 있었거든."

금련은 서문경이 잘도 둘러댄다 싶어 더욱 심술이 났다.

"이렇게 이빨 자국들이 많으니 이 부채는 이미 쓸모가 없겠어요."

그러면서 금련이 부채를 두 동강이 나도록 부욱 찢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서문경으로서는 진귀한 수집물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둘러대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구, 이건 비싼 사천 부채인데."

오히려 왕노파가 아까워하며 그 부채 동강들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할멈이 붙여 쓰든지 마음대로 해요. 나는 부채가 많으니까.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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