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파일] 강혜정 베를린영화제 진출작 찍은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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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성식 기자]

지난 연말 영화배우 강혜정(24)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국내 영화팬들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다. 강혜정이 출연한 영화의 제목이나 감독 이름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태국 펜엑 라타나루앙(44.사진) 감독의 '보이지 않는 물결'. 전주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찾은 라타나루앙 감독을 16일 서울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강혜정에 대해 "톡톡 튀고 현대적인 매력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강혜정에 대해 호감이 있었는데 마침 한국 측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제의를 받고 강혜정을 직접 만나 캐스팅했습니다. 같이 일한 기간은 2주 정도였는데 매우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강혜정은 실존 인물인지 유령인지 알 듯 모를 듯하게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인 일본인 요리사 교지(아사노 다다노부)가 홍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태국의 휴양지 푸껫으로 도망가는 배에서 만나 사랑하는 역할이다.

라타나루앙 감독은 "스릴러 같은 느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며 "강혜정은 목소리만 나타나기도 하고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지기도 하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그가 만드는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개봉한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몽환적인 분위기를 통해 현대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표현했다. 이 영화의 주연인 아사노는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라타나루앙 감독은 4월 말 개막하는 전주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이란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다. 매년 국내외에서 재능있는 감독 3명을 골라 30분 안팎 분량의 디지털 단편영화를 만들게 하고, 그것을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그와 함께 에릭 쿠(싱가포르) 감독,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카자흐스탄) 감독이 선정됐다.

그 중 라타나루앙 감독이 만들 단편의 제목은 '12시간20분'.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남녀가 비행기가 날아가는 12시간20분 동안 마치 부부처럼 함께 생활하지만 정작 대화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모순을 그린다. 그는 "내 스타일은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작업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솔직히 말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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