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분실·고문 사라졌지만 ‘제왕적 대통령’ 폐해 여전

중앙일보

입력 2017.01.09 02:08

업데이트 2017.01.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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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종철 그후 30년 <상> 미완의 민주주의

1987년 6월 항쟁은 유권자들이 직접 뽑는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상상 속에만 있었던 민주국가의 대통령 직선제와 평화적 정권 교체가 현실이 됐다.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입법·사법·행정 세 권력이 분리되고 군의 정치 개입도 차단됐다. 권력의 야만적 폭력의 상징이던 서울 남산의 국가안전기획부와 남영동 대공분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직선제 개헌 등 87년 체제 30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통한 검찰 조종
국정원 도청,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공권력의 폭력 은밀하고 교묘해져
권력 독주 제어할 제도 리셋 필요

공권력의 노골적인 폭력은 설자리를 잃어갔지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2년 10월엔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의 홍경령 검사가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지시·방임해 피의자 조모씨가 숨졌다. 고문치사의 망령이 다시 등장하자 국민은 격노했다. 2010년엔 서울 양천서에서 ‘날개 꺾기’ 등의 가혹행위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국가의 폭력이 드러날 때마다 시민들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며 다시는 되살아나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폭력의 시대는 끝났을까. 전문가들은 “아니다”고 답한다. 윤평중 한신대 정치철학과 교수는 “국가정보원의 도·감청부터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을 이용한 편법적인 검찰 활용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의 폭력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공권력의 폭력은 보다 교묘하고 위선적인 방식을 찾아갔다.

국정원의 위법과 탈법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로,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거듭나겠다”고 천명했지만 달라진 형태의 권력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2005년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은 98년부터 4년간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등 1800여 명을 불법 도·감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8대 대선 기간에는 여론 조작에도 개입했다. 국정원은 2011년 11월 심리정보국 요원 70여 명에게 온라인에 야권 대선 후보 비방 글 등을 남기게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선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뒤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야만적인 폭력은 사라졌지만 어둠 속에서 공권력의 음모가 이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야당을 지지하거나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문화예술인 9473명의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등의 불이익을 줬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블랙리스트의 등장은 일제시대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이행처럼 교묘한 폭력의 상징”이라며 “결국 정부가 국민의 정신까지 지배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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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정점으로 한 검찰 권력도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비선 실세, 민정수석과 정치검찰의 음모는 의혹을 양산했고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났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인 대통령이 나타난 것은 지금의 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력의 독주를 제어하려면 법·제도가 제대로 ‘리셋’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종철씨가 떠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갖춰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권력의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87년의 정신이 시민들의 촛불로 되살아난 이유다.

◆특별취재팀=한영익·윤정민·김민관·윤재영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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